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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R

이윤화의 화식서식(話食書食) 신방 차렸던 아래채가 맛집이 되다_전북 장수 편<2부>

2014.04.30 | 조회 : 4,440 | 댓글 : 0 | 추천 : 0




장수밥상


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몇 번이나 이곳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여기에 무슨 식당이... 갸우뚱할 뿐이다. 좀 더 설득하여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마을회관 앞에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일단 차를 세울 수 있게 되어 안심하는 눈치다. 그래도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골목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가니 큰항아리에 흰색으로 쓰여진 ‘장수밥상’이 보인다. ‘설마 여기가 맛집이라니?’ 하는 표정들이다. 일단 들어갔다. 앞마당으로 걸어가는 길의 처마 밑에는 갈무리 채소들이 이것저것 걸려있고 깔끔히 정돈된 앞뜰 정원이 마음을 푹 놓이게 한다. 작고 아담하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본채는 살림집이고 아래채가 식당임을 알 수 있다. 가을걷이가 창고에 그득하고 봄꽃을 기다리는 텃밭은 그저 편안하다. 10남매의 맏이인 남편에게 시집온 태선희 사장의 신방이 40년이 지나 장수밥상이라는 맛집으로 거듭날 줄이야! 많은 시동생들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키우고 시집장가 보내고 긴 세월 모셨던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고맙게도 자식들은 어머니의 고생이 약이 된 양 제 앞가림을 잘해서 각자 보금자리로 찾아갔으니, 이제 부부만 남아 긴 세월 북적거리던 집에서 석부작, 목부작을 만들며 밥집을 즐거운 소일거리인양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본인이 농사지은 걸로 차려지는 밥상이라기에 태사장의 식재창고가 참 궁금했다. 정리 못해놨다고 손사래 치며 보여준 창고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모양새다. 허툰 게 없다. 가을에 수확한 무청시래기가 삶지 않은 채 4개월쯤 바싹 말린 것이 커다란 투명자루마다 한 가득씩 담겨있다. 마른 시래기도 이렇게 푸르를 수 있구나! 이 시래기가 있기에 연중 장수한우와 시래기를 넣은 전골이 가능하겠지. 창고 내 저온저장고를 열어보니, 단지단지 장아찌가 그득한 건 이해가 가지만 양동이에 여러 색상의 장미꽃이 한 다발 꽂힌 채 살짝 비닐이 덮여있는 것 아닌가. ‘시골에 웬 장미?’라는 의문은 방안에 들어와 밥상을 받고서야 풀리게 되었다. 꽃을 좋아해서 꽃을 심고 장미, 국화, 야생화 등 갖가지 꽃차에 조예가 깊은 사장은 손님상에 꽃이 빠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꽃이 귀한 겨울이나 이른 봄날엔 장에 가서 일부러 장미다발을 사온다는 것이다. 작은 것에 내가 감동한 걸까? 작은 것으로 태사장이 나를 감동시킨 것인가? 여하튼 밥상의 장미꽃은 웃고 있었다.


장수에서 한상차림을 먹었다고 하면 과연 어떤 상을 떠올릴까? 전라도 밥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짭짤한 젓갈과 진한 맛의 여러 가지 묵은 김치들을 떠올릴지도 모르리라. 강한 전라도 상을 기대한 분들에겐 약간 실망일 수도 있겠지만 장수밥상은 고지식할 정도로 재료의 맛을 순박하게 살리고 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자체로도 깨끗했던 시래기, 돌미나리, 말린 호박, 비트, 더덕이 청순한 화장기를 머금은 듯 약간의 치장만으로 상에 올라와 있다. 어라? 연근조림에 붉은빛이 감돈다. 들어보니 농사지은 비트로 물을 들여 놓았단다. 흔한 브로컬리무침인가 했더니 집된장으로 간을 해서 슴슴하면서도 맛이 깊다. 얌전히 쪄 놓은 조기 위에는 가늘게 썬 흰파채가 소복히 얹혀 있다. 아카시아꽃장아찌, 쌉쌀한 머위장아찌, 더덕 향이 그대로 나는 싱싱한 흰색의 더덕피클...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밥을 먹고 나니 수수부꾸미를 부쳐 작은 채반에 기름을 빠지게 하여 내오셨다. 팥앙금도 안들어간 그냥 부침개이니 별맛이랴 싶은 모양새다. 그런데 먹고 나니 상상의 반전이다. 찹쌀가루 하나 들어가지 않는 100% 수수가루이기에 약간 거친듯하지만 진정한 참맛이다.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고 식재료 쌓아둔 창고 앞에서 떠나질 않는 나같이 식탐 매니아들이 장수밥상에 왕왕 찾아온단다. 그런 떼쓰기 고객들 성화에 머위장아찌를 비롯해 한두 가지 장아찌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물론 밥 먹고 난 손님들에게 파는 것이다.


긴 시간을 일궈온 많은 농사일,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가족들 뒷바라지, 자식건사하기, 그 와중에 크게 몸이 아팠던 태사장의 사연...이 모든 것을 들으면 큰 한숨이 나올 것 같은데 장수밥상 부부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천하태평 여유다. 용암마을은 그래서 長水(장수)에 있는 여유의 長壽(장수)마을인가 보다.

메뉴 마나님밥상 15,000원, 약선등갈비찜 30,000원
주소 전라북도 장수군 용암골 65 (산서면 신창리 530-36)
TEL 063-351-3724
예약제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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