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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화의 화식서식(話食書食) 추사한정식 ‘월정’을 다녀와서_<2부>
2014.03.10 | 조회 : 4,525 | 댓글 : 0 | 추천 : 0

월정 자매의 팀웍
한적한 시골에 있는 ‘월정’에서 도쿄의 코이케형제가 떠오른 건 왜일까? 멀리서 바라보는 멋대가리 없는 단층건물과 주변의 황량한 밭. 그것이 월정의 모습이다. 누구라도 처음 왔다면 설레며 음식점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 첫 이미지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단 한번만 왔어도 모두 월정에서 편안한 안심의 기류를 느끼게 된다. 나긋나긋한 상냥함을 찾기는 어렵지만 월정 자매에게 손님들은 이곳 음식이 속임이 없고 말한 그대로 나온다는 강력하게
신뢰를 보내게 된다. 홀을 맡은 언니나 음식을 맡은 동생이 가장 극진히 모시는 것은 월정을 찾은 고객이 아니다. 그녀들은 고객보다 고객이 드실 음식의 식재료를 더 떠받들며 모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에 오르는 밑반찬인 무말랭이무침 하나라도 한눈 팔거나 구색으로 올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밥상에 오를 찬이 조금이라도 부족할 듯한 날은 손님을 받지 않는 나름의 룰이 있다.
“어느 날 아들부부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마지막 식사를 우리 월정에서 하셨어요. 당시엔 제가 바빠서 할머니가 얼마나 잘 드셨는지 뭐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그런데 몇 년 지나 그 분들이 오셨어요. 할머니가 더 이상 거동을 못하여 아들 등 뒤에 엎혀서 들어오시더라고요. 몇 년만에 할머니가 손꼽아 찾아주신 음식이 우리 월정이라는 것에 너무 고마웠죠. 그런데 쇠약해셔서 걸을 수도 없어지신 모습을 보니 안쓰러 가슴이 찡하니 뭉클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한테 하루는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지만 손님 한분 한분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지 뭐에요. 그 할머니가 요즘도 가끔씩 생각나요. 더 잘해드렸어야 되는데…”
요즘 많이 오는 고객 중에는 중국, 일본 등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외국인 접대를 하기 위해서 종종 찾는다. 월정에서 밥을 먹으면 계약성사가 잘 된다고 좋아한단다. 상 위에 오른 종지 하나에도 기본이 탄탄한 남다른 정성의 기류가 성공접대를 촉진하는 것일지도 모르리라.
달밭농장의 간장적금
금리가 높고 투자율을 운운하며 따지지 않더라도 흔히 재산을 불리는 방법이 적금이다. 금쪽같은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결혼자금을 마련하고, 집 마련의 종자돈도 모으고, 유럽여행도 준비하고, 쓸 곳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늘 사용할 곳은 너무 많은데, 힘든 건 모으는 고통이다. 마치 보이지 않은 정상을 향한 산 아래의 시작발자국만 매일 뜨는 것처럼 말이다.
20대 주변에 저축의 여왕이라 불리는 악발이 선배의 적금 수다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 가지 적금통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지겹고 이직 등 생활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우니까 1~2년에 끝날 수 있는 여러 적금통장을 가지고 있어 하나의 적금이 만기되면 다른 통장, 마치 메인 서버에 데이터를 옮기듯 이동시키라고 하며 적금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선배의 말을 꼼꼼히 따랐더라면 나도 지금쯤 두둑한 메인서버통장을 보유하고 있을 텐데 끈기가 없는 난 남의 재산증식만 먼산 바라보듯 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월정 차사장의 적금통장을 보고 부럽고 부러워 여러 번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적금을 이용하는 곳은 은행이 아니고 3천평 농장 초입의 마당 한 켠에 있는 작은 ‘달밭농장’에 있는 큰항아리였다. 햇간장이 3년이 되면 큰 독에 붓고 또 붓고, 큰 항아리의 적금 구력은 무려 35년. 10여년 전 서울에서 이사올 때 가져온 세월까지 가득 담은 항아리와 그 안의 조선간장은 3년 만기 간장적금의 모음이었다.
찍어 먹어보니 참 달다. 긴 시간의 모음은 오랜 고난이었겠지만 맛이 이렇게 달 수가 있다니! 결국 난 차사장의 적금간장을 PT병 하나로 얻어오는 염치없는 횡재를 하고 말았다. 큰 항아리의 간장이 월정상차림의 기본 간맞춤이다. 달밭농장은 대규모 재래장 사업을 하는 장독대마냥 몇 백개의 독이 줄세워진 규모는 아니나 홍매실나무 아래 크고 작은 독이 무질서하지만 편안하게 펼쳐있다.
차혜자씨는 7~8년된 묵은 된장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된장이 각양각생인데, 이곳은 된장이 마르면 콩물을 부어 촉촉하게 한 뒤 긴 시간 양지바른 장독대에서 잘 관리하여 오래되었어도 색이 혐오스럽지 않은 편이다. 이 된장으로 월정의 밥상을 차리고 그걸 손님에게도 팔고 있다. 단골들은 월정 된장은 ‘짜지만 참 달다’라며 또 찾곤 한다. 떫고 시큼한 햇된장이 싫어 제대로 묵은 장으로 깊고 구수한 맛을 내는 그녀의 된장찌개, 바로 그 맛이 차혜자씨가 제일로 꼽는 맛이기도 하다. 참 부럽다. 달밭농장에 있는 그녀의 간장적금통장들. 적금으로 돈을 모으는 것은 더 나은 윤택한 삶을 위함이다. 차혜자씨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식당이 안돼서 돈이 없을 때에도 우리 창고에는 먹을 게 참 많아요. 우리 부자 아녜요?”라는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월정엔 못생긴 것들이 참 많다>
월정에 가니, 나의 작은 키와 짧은 종아리, 주름진 피부가 별로 기죽지 않는다. 식당 옆 비닐하우스에는 나보다 못생긴 것이 많아도 너무 많다. 매달지 않고 지푸라기 위에 널어 놓아 흰곰팡이가 곱게 핀 크고 작은 메주덩어리들,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대기중인 모양 없이 펼쳐진 삶은 콩들, 가분수처럼 알뿌리가 짤뚝한 움파 그리고 겨우내 얼지 말라고 움밭처럼 만든 나무상자 뚜껑을 여니 울퉁불퉁 어이없게 못생기고 잔뿌리가 많은 당근과 무가 나온다. ‘인물 참~ 좋다!’, ‘저 무보다는 내 다리가 양반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음식의 남은 찌꺼기영양분은 어디로 갈까하는 의문도 든다.
비닐하우스를 나와 마당 아래 닭장에 가니 궁금해하던 영양분 덩어리들이 뛰어놀고 있다. 십여마리 이상의 토종닭깃털이 어찌나 윤이 날 수가 없다. 멀리서 도닭털이 반짝인다. 닭알이 매일 한정식의 부드러운 달걀찜이 되어 나온다. 월정에 처음 와서 반해버린 음식은 작은 스텐 밥그릇에 나온 달걀찜이었다. 달걀찜 하나로도 월정 음식의 균형을 대변할 수 있을 듯 한데, 오늘 바로 힘차게 뛰어노는 윤기나는 닭털로 닭알의 건강성까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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