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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달밥상 #산속의친구 #오지나 #지미원 #한가향 #에빗 #큔 #봄차반 #기순도명인

[신년특집] K-스페셜,  발효의 맛

2026.02.09 | 조회 : 232 | 댓글 : 0 | 추천 : 0

 

[신년특집] 

K-스페셜,  발효의 맛

 

전통적인 제철 재료와 정성스런 마음, 고유의 손맛을 버무린 한식으로 입소문난 숨은 맛집을 소개한다

 

글 | 취재  (주)다이어리알 이윤화 ▪ 김성화 

 

 

2026년 병오년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는 다시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속도와 효율이 모든 것을 압도하던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은 다시 몸이 기억하는 맛, 마음을 붙잡아주는 따뜻한 밥상, 지역의 삶과 흙냄새가 배어 있는 재료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국내 미식씬 역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오래된 것에서 미래의 길을 찾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성, 웰니스, 로컬 기반의 식문화가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한식의 근간인 발효와 로컬의 가치, 제철의 미학이 시대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의 다양한 미식 현장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제철과 약채(藥菜)의 미학을 구현한 건강 밥상, 지역성과 치유의 개념을 결합한 한식 공간, 전통 상차림의 품위를 현대적으로 잇는 집, 그리고 발효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명인의 이야기까지… 서로 다른 지향점 속에서도 앞으로의 한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민들레 한 잎, 산나물 한 줌 제천의 사계절을 짓는 <열두달밥상>

 

충북 제천시에는 ‘약이 되는 채소의 즐거움’이라는 뜻의 ‘약채락(藥菜樂)’이라는 건강음식 브랜드가 있다. ‘열두달밥상’은 리솜포레스트 리조트 인근에 자리한 약채락 맛집 중에 하나다. 이곳의 김영미 사장은 약선 요리가 좋아 고향인 제천으로 귀향해 식당을 차렸으며 직접 텃밭을 가꾸며 이름처럼 사계절 자연의 건강함을 담은 밥상을 선보인다. 가마솥에 지은 약초밥과 귀한 하얀 민들레솥밥은 이곳의 대표 메뉴. 기와 혈을 보하는 팔물탕을 밥물로 써서 깊은 풍미를 살린 약초밥이다. 누룽지 국물까지 완성도 높은 하얀 민들레솥밥은 쌉싸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살아있어 건강과 맛을 모두 만족시킨다. 상차림으로는 화살나무, 어수리, 참당귀 등 귀한 산나물 등 12 찬이 정갈하게 차려진다. 염도 조절이 탁월해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또한 직접 담근 간장과 장아찌, 즉시 도정한 쌀과 착유한 기름, 친환경 김치 등 정직한 재료 사용이 밥상 전체에 녹아 있다. 특히 덜 익은 사과를 활용한 장아찌처럼 버려질 것 같은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살리는 지속 가능한 접근도 돋보인다. 매장 분위기가 쾌적하며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자연경관이 마음마저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열두달밥상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밥상”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곳이다. 깊은 정성과 철학으로 약선의 가치를 일상 식탁에서 실천하는 제천의 숨은 산채 맛집.

 

©토종하얀민들레밥

 

충북 제천시 백운면 금봉로 161 / 043-643-0888 / 가마솥 약초밥, 토종하얀민들레밥, 곤드레밥

 

 

아득한 오솔길 끝에서 만난 영월 제1호 농가맛집 <산속의친구>

 

강원 영월군 산속 깊은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나타나는 곳, 영월 제1호 농가맛집 ‘산속의 친구’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낯설고 아득한 길조차 이 집에 다다르는 여정의 일부가 된다. 이름 그대로 산속에 자리한 작은 식당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들른 듯한 따뜻함을 전한다. 이곳의 가장 큰 자랑은 ‘시간이 만든 맛’이다. 오래 숙성된 장류와 효소만을 사용해 화학조미료를 일절 넣지 않고, 임야에서 채취한 자연산 나물, 아침에 직접 만든 손두부, 7년 숙성 죽염으로 끓인 된장찌개 등 건강한 밥상을 한가득 차려낸다. 되직하게 뭉친 콩비지, 나물 전병, 은은한 향의 치자밥까지 담백하면서도 정갈한 맛이 이어진다. 특히 오랜 연구 끝에 만든 ‘된장 블록’은 뜨거운 물만 부어도 깊은 시골 된장국의 맛이 살아나 여행객들의 양손을 무겁게 한다. 어수리·눈개승마 등 귀한 산나물을 활용한 전통 죽염 된장국 제품도 판매해 영월의 맛과 시간을 들고 갈 수 있다. 창 밖 풍경은 액자 속 한 장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햇살 가득한 창 너머로 산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르신들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하고 편안한 한 끼를 누릴 수 있는 곳.

 

©직접 빚은 메주

 

강원 영월군 북면 덕전길 132-54 / 010-7250-5177 / 강원나물밥한상차림, 솔순고추장, 5년죽염된장

 

 

제주의 자연, 발효와 회복의 철학을 담은 치유 다이닝 <오지나>

 

제주의 돌과 바람, 짙은 녹음이 맞물린 풍경 속에 특별한 다이닝 공간 오지나가 자리한다. 이곳은 28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을 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전국을 돌며 재료와 조리법을 배워내고 자연의 힘에 의지해 차려낸 어머니의 ‘살리는 밥상’, 그리고 이들의 역사와 철학을 이어나가는 자식들이 함께 힘을 모아 탄생시킨 공간이다.

오지나의 철학은 명확하다. “음식은 약이 되고 시간은 재료가 된다”이다. 이는 이 가족이 몸으로 증명해 낸 한 문장이다. 식재료는 농약과 비료 없이 직접 기른 농산물 혹은 엄격히 선택된 계약 재배 작물로 준비된다. 장은 직접 띄운 메주와 고로쇠 수액으로 담그고, 한 종가에서 130년을 이어온 씨간장이 맛의 중심을 이루며, 15년을 발효시킨 김치가 시간의 깊이를 보여준다. 제주의 기후와 해풍, 화산암반수, 풍부한 식생은 발효가 숨 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 오지나의 상차림은 화려함보다 울림을 남긴다. 대표 메뉴인 15년 묵은지 김치찜은 15시간 넘게 천천히 끓여 깊이를 만들어내고, 홍해삼 샐러드, 서리태 콩국수, 자연산 전복찜은 재료가 가진 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홉 번 찌고 말린 구증구포 발효차, 세계 3대 향을 차로 풀어낸 프로그램 역시 이곳만의 고유한 경험을 완성한다. 글로벌 고객을 위한 배려 역시 돋보인다. 핵심 장류와 김치의 할랄 인증, 할랄 프렌들리 레스토랑 인증은 다양한 문화권의 미식 경험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발효의 지혜, 가족의 집념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 공간. 오지나는 오래된 방식이 왜 오늘의 미식에서도 유효한지, 그리고 좋은 음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깊고 조용한 울림으로 증명하고 있다.

 

©15년 묵은지 찌개

 

©숙성실전경

 

주소 비공개 / 예약제 운영(DM문의) / 인스타그램 @ojinajueju(DM문의)

 

 

궁중 음식의 맥을 잇는 명장의 식탁 <지미원>

 

전북 군산시에 자리한 궁중한정식 전문점. 2002년 문을 연 이후 궁에서 올리던 음식과 군산 향토 재료를 결합해 온 곳으로 그 중심에는 유현자 대표가 있다. 군산 토박이인 그는 드라마 ‘대장금’, 영화 ‘광해’ 속 음식을 담당했던 실력자로 2022년 군산시 제1대 명장으로 지정됐다. 한국 궁중 음식의 큰 스승 황혜성 선생의 제자로 군산의 풍부한 재료와 토속 내림 음식을 우아한 궁중 방식으로 승화시켰으며 궁중음식의 맥을 정통하게 잇는 몇 안 되는 전문 연구자로 꼽힌다.

지미원은 궁중요리와 반가음식, 그리고 군산이라는 도시의 역사·발효·풍요를 한 상에 담아내는 공간으로 계절의 흐름과 지역 식재료를 고려한 상차림이 특징이다. 먼저 구절판과 여러 밑반찬이 남다른 기품을 보여준다. 은은하게 빛나는 유기그릇, 약고추장부터 고춧잎·셀러리 장아찌, 홍시로 맛을 더한 묵은지까지... 품위 있는 전통 한정식의 품새가 그대로다. 연자육과 밤으로 만든 죽은 며칠을 끓였다 식히기를 반복해 얻은 부드러움이며, 민물새우탕은 무즙의 순수한 단맛이 스며들어 정갈하고 단아한 맛을 낸다. 능이버섯 찰전병과 자연산 버섯전골은 육수까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깊이를 보여준다. 군산 특산 갈치식해와 밴댕이젓, 4~5년 된 파김치와 깻잎장아찌는 향토성과 발효의 진수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거피한 깨강정과 오미자차로 입안을 정리하며 한 끼를 마무리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음식을 내올 때 그 유래와 맥락을 직접 설명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식사를 궁중음식의 역사·조리철학·재료의 배경을 함께 체험하는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전북 군산시 부곡1길 6 / 063-463-3900 / 궁중한정식(예약제 운영)

 

아름다운 정원이 머금은 발효 한식의 품격 <한가향>

 

서울 도봉구의 대표 미식 공간이던 양식당 ‘메이다이닝’이 2024년 초 전통 한식당 ‘한가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근심 없는 동네’라는 의미의 무수골에 자리한 이 식당은 이름처럼 여유롭고 단정하며, 한식의 정신과 자연의 호흡이 함께 살아 있는 곳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기순도발효학교 출신 한승윤 대표가 있다. 그는 기순도 명인에게 장을 배우며 발효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였고 이제는 식당 옆 장독대에서 직접 장을 담그며 한국 발효 음식을 식탁 위에 올리고 있다. 오이선, 탕평채, 구절판, 신선로, 족편 같은 손이 많이 가는 한식들을 기본으로 선보이며, ‘기본에 충실한 상차림’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장맛이 안정되면서 음식의 깊이도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한가향의 감동은 밥상을 넘어 정원에서 완성된다. 건물 뒤로 펼쳐지는 2만㎡ 규모의 시크릿 가든은 사계절이 들려주는 풍경이 다채롭고, 곳곳에 쉬어 갈 의자들이 놓여 있어 여유로운 산책을 돕는다. 모과나무가 상징처럼 서 있는 입구부터 몇백 년 된 수목들이 품은 기운까지... 서울에 있으면서도 서울 밖에 나와 있는 듯한 해방감을 준다. 정원과 실내 공간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내부는 화강암 외벽과 잔잔한 베이지 톤의 인테리어로 단정하게 꾸며져 있고, 룸과 홀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조용한 식사부터 가족 모임까지 유연하게 대응한다. 이런 구성 덕분에 한가향은 매년 봄·가을이면 야외 웨딩이나 스몰 이벤트 공간으로도 주목받으며, 도심에서 흔히 찾기 어려운 자연 속의 프라이빗함을 제공한다.

 

 

서울 도봉구 도봉로169길 202 / 02-904-5000 / 연향코스, 화향코스

 

 

 

 

한국 식재료와 발효의 미래를 설계하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에빗(EVETT)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에빗(EVETT)’은 호주 출신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으로, 한국 식재료와 발효를 세계적 파인다이닝 감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인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미쉐린 1스타를 유지했고, 2025년에는 2스타로 승격하며 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단기간에 한국 다이닝 신의 상징적 존재가 된 이 레스토랑의 중심에는 ‘한국 식재료’와 ‘발효’가 있다. 특히 장(醬) 문화는 그에게 하나의 철학이자 미식적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실제로 담양 기순도 명인 장고지와 서울을 오가며 메주를 띄우고 장독대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발효를 배운다기보다 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집요함이 그의 요리에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식재료와 발효 문화를 편견 없이 바라본 셰프의 시선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메뉴로 이어졌다. 감과 고추장 젤리에 딱새우를 말아낸 요리, 메주를 그릇 삼아 선보이는 도넛, 식혜를 반죽에 활용한 메밀국수 등 익숙한 재료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다. 에빗의 요리는 전통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가진 고유한 재료와 발효의 지혜를 동시대의 미식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조셉 리저우드가 에빗을 통해 한국 다이닝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0-5 1층 / 070-4231-1022 / 런치코스, 디너코스, 한국술페어링

 

 

생산자가 보이는 채소, 발효가 정의하는 오늘날의 미식, 큔(Qyun)

 

서울 궁정동 사회주택 1층에 자리한 ‘큔(Qyun)’은 이름 그대로 전통적 발효의 핵심인 미생물의 연속성과 생명력을 뜻하는 ‘균(菌)’을 중심에 두고 제철 채소와 발효의 미학을 전하는 카페 & 식료품 상점이다. 이곳은 전국 농부들로부터 공수한 제철 채소에 직접 만든 발효 소스와 버터, 페이스트를 더해 담백하지만 감칠맛 깊은 한 끼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인 ‘구운 채소와 비건 발효 버터 커리’는 두유 요거트와 채수, 템페를 더한 토마토 베이스 커리로, 템페의 고소한 식감이 제철 채소와 어우러져 동물성 재료 없이도 깊은 풍미를 만든다. 철마다 우리 땅에서 제철 재료와 발효를 이용해 만든 ‘제철 비건 아이스크림’도 별미다. 토종 조선생강으로 발효 후 향신료와 함께 끓여낸 진저 발효 시럽, 누룩소금으로 발효한 바냐카우다 소스 등 식료품도 판매한다.

큔을 만든 김수향 대표는 농부시장 마르쉐 공동 기획자이자 홍대 앞 제철 요리 카페 ‘수카라’ 출신으로, ‘생산자가 보이는 채소’의 소비문화 정착과 갓 뽑은 채소의 매력을 알리기 위한 여정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입과 몸이 즐거운 채소를 만들기 위해 주목한 것은 ‘발효’였다. 지하 발효실에서 만든 페스토와 소금, 조미료를 판매하는 그로서리와 수요일마다 열리는 큔 7일장은 생산자가 보이는 소비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발효의 지혜와 채소의 욕망을 다시 깨우는 창구가 되고 있다.

 

©템페샌드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1층 / 010-8765-7560 / 구운채소와 비건발효버터커리 플레이트, 제철비건아이스크림

 

 

손수 빚은 장과 식초로 완주 로컬 밥상의 깊이를 더하는 곳, 봄차반

 

전라북도 완주 용봉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장독과 유리병이 햇살을 받으며 빛나는 작은 마당이 나타난다. 바로 지역 명소로 자리 잡은 자연 발효 음식 전문점 ‘봄차반’이다.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장독, 꽃잎과 과일을 우린 발효청, 천연발효식초가 담긴 병들은 이 집의 밥상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명확히 말해준다. 대표 메뉴인 ‘봄차반 정식’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채와 함께 양념게장, 생선구이, 떡갈비 등이 정갈한 찬과 함께 차례로 올라오는데 직접 띄운 장과 발효 식초 · 발효청으로 맛을 낸 음식들은 조용하지만 깊은 감칠맛을 더한다. 모든 구성은 간이 세지 않고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려 담백하게 이어지며, 한 상이 끝날 때까지 불편함 없이 편안한 흐름을 만든다. 봄차반 음식의 힘은 김충경 대표의 손끝에서 비롯된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각종 자격증, 상장, 수료증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이는 음식에 대한 김대표의 열정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장과 식초를 스스로 배우고 익혀 온 그는 요리부터 가양주, 식기 선택까지 모두 직접 관여해 ‘집 한 채가 온전히 그녀의 철학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도자기 공예품 같은 식기는 맞춤 제작한 것으로 음식의 비주얼과 식탁의 무게감을 더한다. 식사 후 내어주는 발효 식초는 부드러운 목 넘김에 식초에 익숙지 않은 사람마저 놀라게 한다. 봄차반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깊은 맛이 서려, 한 끼 속에 스며든 발효의 시간과 농부의 손길, 밥짓는 이의 정성을 다시 되새기게 만드는 특별한 로컬 식탁이다.

 

©떡갈비구이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구만리 470-3 봉동읍 구만리 470-3번지 / 063-231-5005 / 봄차반정식(2인이상), 봄꽃정식

 

 

370년 씨간장을 지켜 내는 기순도 명인과 발효 밥상

 

전남 담양,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독 1200여 개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풍경이다. 계절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이 장독들은 오랜 시간 이 집안의 삶과 전통을 품어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장고를 지켜온 이는 종가의 10대 종부이자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제35호 기순도 명인이다. 스물네 살에 종갓집으로 들어온 그는 가문에서 370년간 전해 내려오는 씨간장을 대물림하며 종가의 음식과 전통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4년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던 파라과이 아순시온 현장에 고운 한복 차림으로 씨간장 단지를 손에 들고 참석한 기명인의 모습은 이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담양 기순도장고지 전경

 

©기순도 전통장 숙성고

 

종가의 장맛은 시간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비롯된다. 장독 속에서는 메주와 죽염물이 숯·고추·대추와 어우러지며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메주가 50~60일 정도 숙성되면 된장과 간장으로 가르지만 양진재 종가의 진장은 1년 동안 숙성시킨 뒤 간장을 분리하고, 다시 4년의 시간을 더 숙성시켜 완성한다. 이렇게 탄생한 ‘진장(陳醬)’은 발효가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37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종가만의 핵심적 지혜이기도 하다. “장은 연습이 없다”는 그의 말은 이 작업이 지닌 무게를 정확히 보여준다. 해마다 한 번뿐인 작업이기에 모든 과정에서 온전한 집중이 요구된다. 좋은 콩을 고르고, 죽염을 풀어 염도를 맞추고, 메주를 띄우는 과정은 ‘자연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기순도 명인이 가문의 장을 외부에 소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한국 식탁에서 장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한식의 바탕은 결국 장에서 비롯된다는 믿음, 이 신념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조용한 규모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전통 식품 전문 기업 ‘고려전통식품’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존재감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지켜온 장맛은 세계 미식계의 관심을 끌었다. 2018년 프랑스 파리국제식품박람회(SIAL)에서 해외 셰프들은 그의 간장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파리 르봉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 식품관 입점으로 그 평가가 현실이 되었다. 이후 뉴욕의 ‘르 베르나댕(Le Bernardin)’이나 덴마크의 ‘노마(Noma)’등 세계적인 셰프들이 종가를 찾아 장독에 자기 이름을 붙여 장을 숙성시키고, 이를 각자의 레스토랑 메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의 장이 세계 미식의 재료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휘하는 장면이었다.

 

©2025년 파리에서 진행된 유네스코 등재 기념 행사

 

지난 2025년 12월 기순도 명인은 한국의 전통장과 문화, 우수성을 세계에 정식으로 소개하기 위해 사찰음식의 대표 수행자 정관스님과 함께 유럽으로 향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진 “유네스코 유산 장 종가와 사찰의 한식을 꽃피우다! (UNESCO KOREAN Jang Heritage: Where Jong-ga and Temple Cuisine Blossom)” 행사에서는 전통 장 담그기와 장 가르기 시연부터 종가 9첩 반상 · 발우공양 전시 및 프랑스 샹파뉴의 와인 생산자 뱅상 샬롯과 협업한 ‘쌀조청 샴페인 시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발효 문화와 전통 장 담그기 문화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어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한식 기반의 영감을 요리로 표현하는 Wizzy Chung 총괄 셰프와 협업하여 한식에 담긴 발효의 정신을 현지에 전달했다.

 

한국의 전통장이 K-푸드라는 인증마크를 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안에도 기순도 명인의 장독들은 오늘도 햇살과 바람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발효를 이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익어가는 것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지혜, 손끝에 담긴 마음, 그리고 한국 식문화의 정체성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오랜 지혜를 미래로 밀어 올리는 일임을 기순도 명인은 장맛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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