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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기행R] 상갓집 육개장에서 시작된 육개장 집착사
2026.01.21 | 조회 : 2,965 | 댓글 : 0 | 추천 : 0
[미식기행R]
상갓집 육개장에서 시작된 ‘육개장 집착사’

음식을 즐기기에 죽이 잘 맞던 팀원 세 명과 함께 일하던 때가 있었다.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이 잘 맞아서 퇴근 후엔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심지어는 휴가를 맞춰 동남아 국수를 먹기 위해 쿠알라룸프르까지 해외식도락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음식에 대한 열정 하나로 어디든 기꺼이 달려가겠다는 결의로 묶인 세 자매 ‘먹방 조직’이었다.
어느 날 지인의 초상집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됐다. 상갓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개장이 나왔는데, 그날의 육개장은 빨간 국물이 무색하게도 이상하리만큼 맹숭맹숭하고 멀건 맛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세 자매는 술만 먹으면 육개장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상갓집 막국물로 추락한 육개장은 안된다.”며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제대로 된 육개장은 무엇인가?”를 두고 탁상공론을 하다 직접 육개장 맛집을 찾아 헤매는 현장 실사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맛집을 차렸다 접는 것처럼, 우리도 수많은 ‘세 자매 육개장’을 상상 속에서 여닫기를 반복했다.
국내 외식 메뉴로서 육개장은 1930년대 초 서울 종로구 공평동 ‘대연관’에서 팔았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가정에서 끓여 먹었던 역사는 더욱 길다. 20여 년 전만 해도 외식 시장에서 육개장을 단독 메뉴로 판매하는 전문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외식 시장이 성장하며 업종이 다양화됐고 각자의 무기를 장착한 전문점의 종류도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처럼 육개장에 꽂힌 누군가에 의해 육개장 프랜차이즈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 ‘식객’에서 주인공 성찬이 대령숙수의 칼을 놓고 벌인 요리대회에서 선택한 요리도 육개장이었다. 상대가 화려한 재료와 기교를 앞세운 것과 달리 성찬은 ‘국물의 기본기’로 승부를 봤다. 영화 속 심사위원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입가에 빨간 국물 자국을 남기던 장면은 나에게 묘한 디테일로 남았다. 그리고 조리 방법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혹시 국물에 고추기름을 쓴 것일까? 아니면 다데기(양념장)에 콩팥 주위의 소기름인 두태 기름이 들어가 진한 맛을 낸 것일까? 그 작은 흔적에서 무수한 상상들이 이어졌다.
어릴 적 우리 집 육개장은 언제나 인기 메뉴였다. 식구가 많은 집이었기에 엄마는 국물의 깊이를 위해 소의 내장을 넣었고, 나는 그것이 비싼 소고기를 줄이면서도 진한 맛을 내기 위한 지혜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중에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이용기)’을 들여다보니, 육개장 레시피에도 내장이 넉넉히 들어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의 방식은 단순한 ‘절약형 요리’가 아니라, 옛 조리법의 계승이기도 했던 셈이다.
흔한 가정식 요리인만큼 집집마다 스타일이나 비법이 다른데, 우리 집 육개장은 얼큰하고 빨갛기는 했지만 기름이 둥둥 떠다니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어 직접 육개장을 끓여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오랫동안 우려낸 깊은 국물 맛은 단순히 기름의 윤기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외식업에서 육개장이나 짬뽕과 같은 국물 음식은 기름의 윤기가 ‘상품력’으로 둔갑되곤 한다. 고기 원육을 적게 쓰면서도 충분한 포만감을 주기 위해 각종 기름이 조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이런 외식용 육개장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상갓집 육개장을 먹으면 매우 빈약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름진 맛도 부족하고 가정식처럼 푹 고아낸 깊은 맛도 아니니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국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육개장은 원래 개장국(개고기+장국)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개고기 식용에 대해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귀한 소고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며 소고기가 보편화되자 개장국의 양념을 가져와 소고기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오늘날의 육개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옛날 육개장 맛집 만들기 프로젝트’는 결국 술안줏거리로 끝났지만, 지금도
제대로 된 육개장을 만나면 가장 먼저 세 자매가 떠오른다. 내 입맛의 기준을 만들어준 그 시절을 지나 여전히 ‘나만의 육개장 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그중 깊은 국물의 육개장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차분한 가정식 육개장
서래한상
서래마을에 새롭게 문을 연 한식집.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점심 특선 한우육개장’이 종이 현수막으로 걸린 모습에 점심 영업을 위해 급조한 메뉴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하며 방문했다. 곁들이로 나온 다섯 가지 찬은 소박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았고 육개장 자체의 담백한 자태가 집에서 끓여낸 듯 차분하다. 한 숟가락 뜨니 곧이곧대로의 소고기 육수. 고비·무·파·숙주가 듬뿍 들어 있고 양지머리는 잘 찢어진 상태로 올려낸다. 요란한 외식형 육개장들이 범람하는 요즘, ‘육개장의 정석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듯한 맛. 겉과 속이 고르게 어우러지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한우육개장 12,000원
서울 서초구 서래로8길 7 1층
02-599-7035
순한 붉은빛 버섯육개장
두물머리연꽃마을
양수리 가는 길은 언제나 시원하고 아름답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여명도 노을도 또는 뙤약볕의 한낮도 모두 그림 같다. 그곳에서 집밥 같은 시원한 육개장을 만났다. 순한 붉은빛의 얼큰한 국물이다. 테이블에 놓인 돌솥에서 끓고 있는 대파와 버섯 고명만 봐선 평범해 보인다. 이곳의 주인장은 옛날 양수리 우시장에서 순대를 만들던 할머니와 간판도 없이 역전식당으로 불린 음식점에서 손맛을 자랑한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아 3대째 식당을 하고 있다. 8년 전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물려받아 본인 나름의 노하우를 보태 깔끔한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샤부샤부와 육개장을 내놓고 있다. 양평 지평면 수곡리에서 구한 느타리버섯을 듬뿍 사용하기에 버섯육개장이라고 불린다.


얼큰버섯육개장 10,000원, 맑은버섯육개장 10,000원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로 41
0507-1310-7183
매워도 다시 한번
순우리(구 새벽집)
수원 미식가들이 추천하는 한우 육개장 명가. 오랜 지역 고깃집의 내공이 녹아 있다. 보기에도 매워 보이고, 먹으면 더 맵다.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중간이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나온다니 맵기를 가히 상상해 보길. 쭉쭉 찢은 양지머리고기, 고사리, 대파 등이 국물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깔끔한 매운맛은 또다시 먹고 싶게 하는 충동을 일게 한다. 냉면기에 담긴 한 사발 빨간 국물. 집 밖에서 만나는 육개장의 품격이다.


육개장 10,000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수대로519번길 12-9
031-223-0092
대파 듬뿍 대구식 육개장
옛집식당
대구에는 예부터 대구탕(大狗湯)이 있었다. 생선의 대구가 아니라 개고기를 이용한 얼큰한 탕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쇠고기로 끓이면서 대구식 육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육개장 전문점 중에서 옛집식당은 대를 이어 육개장에 승부를 걸고 있는 집이다. 옛집식당의 마룻바닥과 방안의 자개농이 언제 가도 할머니의 손길로 반들반들 윤이 나듯, 스물두살 때부터 끓여 온 육개장의 국물도 늘 같은 맛으로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이어가고
있다. 예전엔 내장, 허파를 넣어 진한 육개장을 끓이다가 고객들이 점점 기름기 덜한 국물을 원해서 요즘은 내장을 빼고 끓인다. 대파를 듬뿍 넣은 육개장은, 칼칼하지만 뒤에 남는 매운맛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남는다. 겨울 추위엔 말할 것도 없고 한여름의 보양 국물로도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맘이 절로 든다.


메뉴 육개장 11,000원
주소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6길 48-5
전화 053-554-4498
부드러운 살코기 대파육개장
바른식당 정육점
“21일이 지나면 애인은 오지 않고 잘 숙성된 고기가 온다.” 바로 이곳에서는 1.2℃에서 21일간 숙성한 고기를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숙성되는 고기 덩어리들을 투명 냉장고에서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은 것부터 고객들을 압도한다. 그런 숙성육이 육개장에도 들어가는지 고기가 유난히 부드럽고 대파의 단내와 감칠맛이 또렷하다.


진도대파육개장 15,000원
서울 서초구 동광로 80
02-3482-5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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