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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식품명인 제52호 이연순

[기획시리즈 VOL7] 시간을 빚고 전통을 품다_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다 : 승검초단자편

2025.09.19 | 조회 : 72,917 | 댓글 : 0 | 추천 : 0

 

 

 

약이 되는 떡, 다시 빚다 제천의 승검초단자와 이연순 명인

 

 

물 맑고 산세 깊은 제천은 오랫동안 약초의 도시로 불려왔다. 그 땅의 기억을 품은 한 덩이 떡이 있다. 승검초당귀의 향을 그대로 품은 초록빛 단자다. 잎을 찧어 즙을 내고, 찹쌀가루에 배어들게 한 뒤, 꿀로 간을 한 거피팥소를 품어 잣 고물로 마무리한다. 한 번의 간식이 아니라, 먹는 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려는 약선의 철학이 응축된 방식이다.

 

사라졌던 이 떡을 다시 오늘의 식탁으로 데려온 이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52, 이연순. 할머니 김월선과 어머니 김동기로 이어진 집안의 손맛, 고서 속 전통 조리법, 수십 번의 시행착오가 한 점으로 모여 승검초단자는 기억의 맛에서 현재형 전통이 되었다. 전통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현대의 생활에 맞게 다듬어 대중과 나누는 일이연순 명인이 걸어온 길은 약식동원의 가치를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약선음식과 약초떡

 

Q. 승검초라는 약초에 대해 먼저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연순 명인:  승검초는 사실 우리 민가에서 흔히 보던 풀이었어요. ‘당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동의보감에서도 피를 맑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효능이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건강에 좋은 약초라 예전에는 약재뿐 아니라 식재료로도 널리 쓰였지요.

 

Q. 그런 승검초로 만드신 떡이 바로 승검초단자군요. 어떤 떡인가요?

이연순 명인: , 승검초의 즙을 내어 쌀가루에 섞고, 꿀을 넣은 거피팥소를 속으로 채워 곱게 빚은 뒤 잣 고물을 입힌 떡이 승검초단자입니다. 모양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승검초의 약효가 살아 있는, 말 그대로 약초떡이에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우리 전통 음식 문화, 약선음식의 맥락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Q. 그렇다면 어떻게 승검초단자를 다시 복원하게 되신 건가요?

이연순 명인: 저희 할머니께서 약보다 좋은 떡이라며 즐겨 드시던 게 바로 승검초단자였습니다. 그 기억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저는 집안의 옛 요리법을 바탕으로 고문헌을 찾아 기록을 확인하고, 전통 조리법을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그 결과 승검초단자를 다시 빚어낼 수 있었지요.

 

Q. 제천은 약초의 고장으로도 유명한데요. 선생님께서는 이 지역성과 어떤 인연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연순 명인: 제가 살고 있는 제천은 물이 맑고 산세가 좋아 예부터 약초 재배가 활발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3대 약령시장 중 하나였던 제천약초시장이 있었을 정도로 약초 문화가 뿌리 깊지요. 이런 배경 덕분에 제천 음식문화에는 약초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한방음식, 약선음식의 기반이 바로 제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약선음식(藥膳)’이라는 개념이 조금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연순 명인: 약선은 말 그대로 약이 되는 음식이에요. ()과 음식 선()을 합친 말인데, 이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좋은 식재료를 골라 쓰고, 먹는 이의 체질과 건강 상태를 고려해 조리하는 것이죠. 약초를 무조건 넣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이론과 음식 궁합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약의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은 살릴 수 있어요.

 

Q. 드라마 대장금에도 약선 개념이 잘 드러난 장면이 있었지요.

이연순 명인: ,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장면에서 주인공 장금이가 기름진 만한전석대신 건강식 밥상을 내놓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긴 여정으로 당뇨 증세가 심해진 사신에게 기름진 음식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설명하며, 소박하지만 몸에 이로운 상차림을 내놓지요. ‘먹는 이에게 해가 되는 음식을 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고, 결국 장금이가 승리합니다. 그 장면이 바로 약선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Q. 떡의 분류와 조리법을 연구해 오신 것으로도 유명하시죠.

이연순 명인: 떡은 조리 방법에 따라 찌는 떡, 치는 떡, 지지는 떡, 빚는 떡, 삶아 건지는 떡 등으로 나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설기떡 같은 증병, 인절미 같은 도병, 화전 같은 유전병이 있지요. 또 송편이나 경단, 단자처럼 모양을 빚거나 삶아 만드는 떡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역마다 제철 재료를 활용해 독특한 떡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서울의 봉우리떡, 강원도의 메밀전병, 전라도의 수리취떡, 경상도의 모시잎송편, 제주도의 빙떡처럼 지역색이 분명합니다.

 

Q. 명인께서 말씀하신 약초떡은 약선음식의 한 갈래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연순 명인: 맞습니다. 떡은 본래 여러 식재료를 활용하기 좋은 음식이에요. 여기에 약초를 더해 건강 효과를 높인 것이 약초떡입니다. 예전부터 승검초떡, 혼돈병, 구선왕도고, 백봉령떡 같은 한방떡이 전래되어 왔고, 지금도 당귀떡, 호박떡, 생강떡, 둥글레떡, 홍화찰편처럼 기능성을 강조한 약초떡들이 널리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승검초단자는 어떤 의미를 가진 떡이라고 보시나요?

이연순 명인: 승검초단자는 세시풍속에 맞춰 먹던 떡도 아니고, 일상에서 쉽게 만들어 먹던 떡도 아닙니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 특별한 경우에만 빚던 귀한 떡이었지요. 특히 아내나 딸, 어머니가 긴 병치레를 하고 입맛을 잃었을 때,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 드리던 떡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약초떡인 셈이지요.

 

Q. 승검초(당귀)는 어떤 특징과 효능을 가진 약초인가요?

이연순 명인: 승검초는 당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민가나 산속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풀이지요. 이름도 다양합니다. 승암초, 승엄초, 승금초, 신감채 등 여러 이름이 있는데, 암자 근처에서 자라서 붙은 이름도 있고, 맛이 맵고 달다고 해서 붙은 이름도 있어요.

승검초는 동국세시기에 기록될 정도로 예부터 진상되던 귀한 나물이었고, 산림경제규합총서같은 고서에도 조리법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약재로만 쓰인 게 아니라 나물, 구이, 산적, 김치에까지 다양하게 활용됐지요.

 

Q. 당귀라는 이름의 유래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연순 명인: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당귀를 먹고 기운을 차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또 하나는 부인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당귀를 먹고 건강을 회복해 다시 가정을 지켰다는 이야기입니다. 공통적으로 마땅히 돌아온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당귀(當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Q. 한의학적으로 볼 때 당귀의 약효는 어떻게 설명되나요?

이연순 명인: 동의보감에 보면 승검초, 즉 당귀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고 맵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를 보충하고 어혈을 풀어 새 피를 돋게 한다는 거죠. 특히 여성 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월경 불순, 산후 회복, 갱년기 장애 등에 많이 쓰입니다. 또 혈액순환을 돕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재라, 부인병뿐 아니라 두통, 복통, 피부 질환, 변비, 심지어 타박상까지 두루 쓰였어요.

 

 

 

 

전통 떡을 다시 우리 곁으로

 

Q. 승검초떡과의 첫 인연은 무엇이었나요?

이연순 명인:  할머니께서 승검초떡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자주 해 드셨고, 남은 떡을 제 방까지 가져다주실 때도 있었죠. 다만 어릴 땐 약초 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제 입에는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Q. 성장 배경을 들려주세요.

이연순 명인: 충북 단양의 작은 마을에서 중학교까지 자랐습니다. 20가구 남짓한 조용한 곳이었고요. 9남매에 할머니까지 함께한 대가족이었죠. 살림이 아주 궁핍하진 않았고, 집이 비교적 커서 사람들이 디딜방아를 쓰러 자주 오가곤 했습니다.

 

Q. 집안의 요리 전통이 남달랐다고요.

이연순 명인: 친정 할머니 김월선 선생님은 동네에서 소문난 솜씨였고, 어머니 김동기 여사님이 옆에서 도우며 자연스럽게 비법이 이어졌어요. 마을에 큰일이 있으면 두 분이 중심이 되어 음식을 맡았죠. 저는 떡을 하면 동네 집집마다 나눠드리러 다니곤 했고요. 떡은 혼자 먹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음식이라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Q. ‘떡의 색종류가 집안 상에 다양했다고요.

이연순 명인: 화전, 단자, 송편, 부꾸미, 설기, 바람떡 등 여러 떡을 했어요. 지초 기름을 바글 끓여 목단꽃 같은 보랏빛을 내기도 하고, ·승검초로 초록, 치자로 노란색을 내기도 했죠. 할머니가 특히 즐기시던 게 당구떡’, 즉 승검초떡이었습니다. “약보다 귀한 떡이라며 좋아하셨죠.

 

 

 

Q. 마을 행사나 제의(祭儀) 문화와 떡은 어떤 관계였나요?

이연순 명인: 예전엔 설·추석·단오·한식 같은 명절은 물론, 집안 경사나 제사, 마을 행사가 있으면 늘 떡을 했어요. 10월 상달에는 성주·터주 제사로 떡을 대량으로 준비했고, 저는 배달을 도맡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니다 혼난 기억도 나고요.

 

Q. 본격적으로 손맛을 잇게 된 계기는요?

이연순 명인: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듬해 제천으로 이사했어요. 스무 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제대로 도우며 손맛을 익혔죠.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다 떡을 만들어 판매하고, 제천 자활센터 등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그때 제 제자가 지금 제천에서 떡 베이커리로 성공해, 큰 보람이 되었고요.

 

Q. 현장 경험 이후 정통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요.

이연순 명인: 맞아요. 집안에서 전해온 조리법과 책으로 익힌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자란 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서울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궁중음식, 약주, 장 담그기까지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배울수록 지식에 질서가 생기고, 더 깊이 빠져들었죠.

 

Q. 창업과 수상, 이후 활동을 간단히 정리해 주신다면요.

이연순 명인: 2006향토음식개발연구원을 세웠고,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우수체험공간으로 선정됐습니다. 2007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대상, 같은 해 한국음식대전대상 등 상을 받았고요. 2009년 전통음식 기능보유자 자격을 취득해 제조·교육은 물론 소상공인 컨설팅, 비법 전수, 창업 상담까지 활동 폭을 넓혔습니다. 인도 조리경연 심사위원 참여, 우리 떡 우리 한과공저 출간, 전통떡 판로 확대 등도 이어왔고요.

 

Q. 개인적 동력은 무엇입니까?

이연순 명인:요리하는 기쁨가르치는 보람이에요. 가족이 응원해 주지 않았다면 못 했을 겁니다. 알고 있던 것을 원리로 이해하고, 선대의 조리법을 몸으로 다시 배우는 과정이 참 즐거웠어요. 기회가 오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힘든 날도 있지만, 아직도 이 일이 재미있습니다.

 

Q. ‘전통 떡의 복원에서 승검초떡이 갖는 의미를 한마디로요.

이연순 명인: 승검초떡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빚는 떡입니다. 건강을 보살피고, 귀한 이를 위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드는 떡이죠. 사라져가던 떡을 다시 빚어 오늘의 상에 올리는 일그게 제가 계속해 온 일이고,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길입니다.

 

 

 

사라진 떡을 다시 빚다 승검초단자의 귀환

 

Q. 전통 음식 공부를 하시다 승검초단자를 복원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연순 명인: 전통 조리법이 실린 고서를 차근히 공부하다가 승검초단자 기록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땀이 쌓여 나온 조리법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아름다운지, 읽을수록 감탄이 나왔지요. 그때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약보다 귀한 떡이라며 즐겨 드시던 당귀떡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에 잊혀가던 그 떡을 다시 우리 상에 올려야겠다는 마음이 시작이었습니다.

 

Q. 복원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연순 명인: 첫째는 승검초즙입니다. 섬유질이 많아 절구질만으로 곱게 내기 어렵고, 조금만 거칠어도 반죽이 뭉치거나 질감이 상합니다. 둘째는 반죽의 데치기예요. 규합총서에도 보이듯 보통의 찐 떡이 아니라, 반죽을 끓는 물에 데쳐 쓰는 방식이라 수분과 온도, 시간의 균형이 한 치도 틀리면 반죽이 풀어져 버립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할머니께 드리던 그 향과 맛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Q. 복원 이후, 승검초단자는 어떻게 대중과 만나게 되었나요?

이연순 명인: 처음엔 찾는 이도, 파는 곳도 드물었어요. 저는 제 매장에서 상품화해 선보였고,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좋아하시는 분들은 오직 이 떡만 찾을 정도였지요. 그러한 노력들이 쌓여 2013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52호로 지정되는 영광도 얻었고, 지금은 제천의 약초떡하면 승검초단자를 먼저 떠올릴 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Q. 독자들을 위해 전통식 제조법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연순 명인: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승검초즙, 반죽, 거피팥소입니다.

1)승검초즙: 잎을 깨끗이 손질해 절구에 곱게 찧어 섬유를 최대한 부드럽게 풀어 줍니다. (전통식)

2)반죽(구멍떡 데치기 치기): 찹쌀가루에 승검초즙만으로 수분을 맞춰 반죽을 만든 뒤, 가운데 구멍을 뚫은 구멍떡으로 빚어 끓는 물에 잠깐 데쳐 건집니다. 곧바로 꿀을 바른 공이로 오래 치대 찰기를 살려요.

3)거피팥소 & 잣 고물: 껍질 벗긴 팥을 푹 쪄 꿀로 간을 해 새알 크기로 빚고, 완성한 단자 겉에는 으깬 잣 고물을 살짝 뿌려 담백하게 마무리합니다.

 

 

 

Q. 대량 생산이나 실수 방지를 위해 현대식으로 응용하는 팁도 알려주세요.

이연순 명인: 동일한 맛을 안정적으로 내야 할 때는 데치기 대신 을 권합니다. 승검초즙을 넣은 찹쌀 반죽을 동글게 빚어 면포를 깐 시루에 올려 20~30분 쪄 쓰면 수분·점성이 균일해져요. 또 전통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믹서로 즙을 내는 방법도 효율적입니다. 보관은 급속 냉동 후 자연 해동이 가장 좋고, 다시 찌면 과도한 찰기가 생겨 식감이 무너집니다.

 

Q. 승검초가 들어간 다른 떡·한과도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

이연순 명인: . 승검초설기, 승검초편(당귀잎떡), 승검초송편, 혼돈병, 각색편의 승검초편층, 승검초강정, 승검초다식 등 응용이 많습니다. 궁중 연회 기록이나 근대 요리서에도 푸른빛··기능성을 살린 예가 여럿 보여요. 승검초는 색··약리성을 모두 고려한 약식동원의 좋은 재료입니다.

 

Q. 제천이 승검초단자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배경을 설명해 주세요.

이연순 명인: 제천은 예로부터 약초의 요충지입니다. 산세와 수질이 좋아 약초가 잘 자라고, 역사적으로도 약령시장의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2000년대 들어 약초·한방 특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지역성이 더욱 뚜렷해졌고, 저 역시 교육·연구·컨설팅과 해외 교류를 통해 전통 음식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승검초단자가 제천을 대표하는 약선 떡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

 

 

 

Q. 가업 승계와 전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연순 명인: 아들(신재민 전수자)이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하고 국내외 현장을 거쳐 지금은 연구원 운영과 제조 기술 전수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재료를 속이지 말고 아끼지 말라는 제 원칙을 가장 먼저 가르칩니다. 전통을 지키되, 젊은 세대가 공감할 변주도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어요. 딸은 떡케이크 등 새로운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요. 우리 집안의 손맛은 할머니 김월선 어머니 김동기 아들 신재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명인께 승검초단자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이연순 명인: 어머니의 마음으로 빚는 떡입니다. 아픈 이의 기력을 북돋우고 귀한 분을 위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드는, 그 마음이 곧 맛이 됩니다. 문헌 속에만 남은 조상들의 지혜를 오늘의 식탁으로 데려오는 일그게 제 사명이고, 승검초단자는 그 상징 같은 존재지요.

 

Q. 마지막으로, 전통 음식의 내일을 위해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요?

이연순 명인: 우리 전통 음식에는 아직 다시 깨어날 보물이 많습니다. 기록을 찾아 원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재의 생활에 맞는 섬세한 응용을 더한다면 전통은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맛으로 이어질 겁니다. 저는 앞으로도 사라진 떡을 찾아 다시 빚고, 더 많은 이와 나누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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