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R
[기획시리즈 VOL4] 시간을 빚고 전통을 품다_대한민국 식품명인을 만나다 : 전통장편
2025.07.16 | 조회 : 11,069 | 댓글 : 0 | 추천 : 0
속담을 뒤집은 붉은 메주의 맛, 소두장 이야기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 51호 최명희
"팥으로 메주를 쑤어도 믿는다"
속담처럼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져 왔던 팥장은 실제로
오래전부터 이용되고 있었다.
1.속담을 뒤집은 장맛, 그 기원과 기록
Q. 소두장이 무엇인가요?
최명희 명인: 소두장은 쉽게 말하면 ‘팥으로 만든 된장’이라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소두(小豆)’는 팥을 뜻하고, ‘장(醬)’은 발효된 장류죠. 주재료가 콩이 아니라 팥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콩보다 담백하고 순한 맛이 나는 별미 장으로, 나물무침이나 비빔요리, 장떡에 넣으면 은은한 고소함이 살아나요.
Q. 소두장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옛날부터 있었던 장인가요?
최명희 명인: 네, 놀랍게도 소두장은 1600년대부터 조리서에 등장해요. 『색경』(1676), 『증보산림경제』(1766), 『규합총서』(1809), 『조선요리제법』(1917),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등 다수의 고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죠. 당시에는 팥을 삶아 밀가루와 반죽해서 떡장처럼 띄우고, 콩이나 된장과 섞어 항아리에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졌고, 저는 이 전통을 되살리고 산업화하는 데 힘을 쏟아왔어요.
Q. ‘팥으로 메주 쑤어도 믿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정말 팥으로 장을 만들 수 있나요?
최명희 명인: 네, 실제로 조선시대 고문헌을 보면 팥장을 담갔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요. 오히려 예전에는 콩만큼이나 팥도 중요한 장 재료였죠.
Q. 팥장은 어떤 맛인가요?
최명희 명인: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에요. 된장처럼 짠맛보다는, 깊고 순한 풍미가 있어서 나물 무침이나 비빔밥, 장떡 등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단백질, 항산화 성분도 풍부해서 건강에도 좋은 장이에요.
Q. 일반 장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최명희 명인: 팥은 전분질이 많아서 발효 과정에서 훨씬 빨리 숙성되고, 고소한 풍미가 강합니다. 콩보다 쉽게 상할 수 있지만, 저만의 발효 기술을 통해 장기 보관도 가능하게 만들었어요. 이게 바로 전통과 과학의 결합이죠.
CHAPTER 2. 종갓집 장맛을 잇다 - 명인의 뿌리와 전승의 역사
Q. 장 제조 기술을 어떻게 배우셨나요?
최명희 명인: 시집온 24살 때부터 시어머니께서 모든 걸 가르쳐 주셨어요. 손님 맞이 음식부터 명절 장 담그기까지, 종갓집 며느리로서 맡은 역할이 많았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 바로 장이었어요.
Q. 가문의 장 전승 계보가 궁금합니다.
최명희 명인: 시할머니께서 충주지씨 명문가에서 시집오셔서 소두장 비법을 전수받으셨고, 시어머니는 그 가풍을 이어 안동김씨 29대 종부로 살아가셨어요. 저는 그 뒤를 이어 30대 종부로서 전통을 지켜왔고요. 현재는 제 아들 김준영 씨가 31대 종손이자 전수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Q. 전통을 지킨다는 것, 어떤 의미인가요?
최명희 명인: 그냥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조상의 지혜와 삶의 방식, 정신을 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장을 만들고, 전수하고 있습니다.
CHAPTER 3. 명인의 철학, 장(醬)은 문화다 - 고집과 진심으로 빚은 전통의 품격
Q. 장을 담그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최명희 명인: 첫째는 ‘정직함’, 둘째는 ‘정통성’이에요. 식품은 결국 사람이 먹는 것이니까 믿을 수 있어야 해요. 장은 정직한 마음으로 재료를 다루고, 시간을 들여야만 진짜 장이 됩니다.
Q. 재료 선택도 그 철학과 연결되나요?
최명희 명인: 물론이죠. 저는 안동에서 직접 콩을 재배하거나 지역 농가와 계약 재배한 콩만 사용해요. 안동 콩은 단단하고 단맛이 강해서 장에 적합하거든요. 1년에 200톤 정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Q.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는 변화는 어떻게 이루셨나요?
최명희 명인: 고문헌을 꼼꼼히 연구해서 오늘날 기술에 맞게 재해석했어요. 예를 들어 팥을 통째로 발효시키거나, 온습도 조절 발효실을 도입한 것도 그런 변화의 일부입니다. 본질은 지키되, 방식은 진화해야죠.
4. 전통을 다시 짓다 – 소두장의 제조 비법
Q. 소두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요?
최명희 명인: 소두장은 단순한 된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은 아주 세심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해요.
먼저 안동 콩과 팥을 가마솥에 참나무 장작불로 삶아냅니다. 팥은 2시간 삶고 1시간 정도 뜸을 들여 알을 그대로 살려내죠. 삶은 팥에 밀가루를 넣어 주물러 메주처럼 성형하고, 구멍을 내어 잘 띄웁니다. 이 팥메주는 낮에는 햇볕에, 밤에는 황토방에서 건조와 발효를 반복하며 며칠 동안 띄웁니다.
이렇게 만든 팥메주에 묵은 된장, 삶은 콩, 소금 등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옹기에 담고 10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발효시켜 완성합니다.
보통 메주를 으깨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팥알의 형태를 유지해 통째로 메주를 띄우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그래야 장의 미관도 좋고, 풍미도 살아 있거든요.
Q. 발효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명희 명인: 발효는 온도와 습도가 생명입니다. 안동의 기후와 황토방 환경이 맞물려야 곰팡이도 곱게 피고 장 맛이 제대로 나죠. 볏짚에서 나오는 고초균이나 황국균이 중요한데, 저는 매년 같은 지역의 볏짚을 써서 균의 품질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이건 4대째 이어온 방식이에요.
Q. 묵은 된장은 어떤 방식으로 만드나요?
최명희 명인: 된장은 대두를 4시간 이상 장작불로 노랗게 익힌 후, 메주를 성형해 황토방과 햇볕에서 띄웁니다. 여기에도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을 사용해요. 씨간장은 장을 익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맛과 색을 깊고 진하게 만들어주죠. 이 묵은 된장이 소두장의 깊은 맛을 완성하는 열쇠입니다.
5. 장을 담그는 도구들- 맛을 완성하는 전통의 손길
Q. 가마솥은 꼭 필요한가요?
최명희 명인: 네, 가마솥은 두꺼워서 열을 오래 머금기 때문에 콩과 팥을 깊고 고르게 익힐 수 있어요. 장작불로 4시간 이상 삶아야 단맛도 잘 나오고, 장 맛의 기본이 됩니다.
Q. 발효에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시나요?
최명희 명인: 전통 옹기와 발효실을 병행해 사용해요. 옹기는 자연 통기성이 뛰어나고, 발효실은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에 좋아요. 그리고 발효에 꼭 필요한 볏짚도 안동산만 사용합니다. 그 지역의 균총이 살아 있으니까요.
Q. 절구도 아직 쓰시나요?
최명희 명인: 당연하지요. 삶은 콩이나 팥을 절구로 빻는 과정은 손맛과 감각이 필요한 일이에요. 기계도 쓰지만, 전통 방식도 함께합니다.
6. 장의 산업화를 이끌다 - 안동제비원 설립과 장독 1,000개의 기적
Q. 소두장의 대중화는 어떻게 이루셨나요?
최명희 명인: 1998년 ‘안동제비원식품’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60개 장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000개 넘는 옹기에서 연 200톤을 생산합니다.
Q. 대량 생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최명희 명인: 전통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생산량을 늘리는 거예요. 장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장마다 꼼꼼히 기록하고, 숙성 기간도 체크하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Q. 장 외에 다른 제품도 생산하시나요?
최명희 명인: 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도 함께 만들고 있어요. 모두 전통 방식으로요. 팥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류를 한 브랜드로 묶어 판매하고 있어요.
7. 소두장의 내일을 묻다- 명인의 사명, 다음 세대를 위한 장 담그기
Q. 소두장, 앞으로 어떻게 계승되고 있나요?
최명희 명인: 제 아들 김준영 씨가 공식 전수자(2019-51호)로 함께 일하고 있어요. 기술뿐 아니라 철학까지 물려주는 게 중요하죠. 가족이 이어가는 전통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전수 방식입니다.
Q. 젊은 세대를 위한 활동도 하고 계신다고요?
최명희 명인: 네, 학교급식과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이 전통 장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강의도 자주 하고 있고, 방송이나 SNS도 활용해서 소통하고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꿈이 있으신가요?
최명희 명인: 전통 장류의 세계화요. 우리 장은 미생물, 건강, 맛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이에요. 팥장도 언젠가 김치처럼 세계인이 즐기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명인은 2022년 영예의 대한민국식품대전 산업포장을 수상할 정도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명인으로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명가명품 4년 연속 대상, 식품기술 대상, 경북중소기업대상, 경북우수브랜드 선정, 다수의 특허, 전통식품인증, 전통장 강의 활동, 2세에 기술 전수 등 다양한 분야에 종가에서 물려받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명인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장류를 명품화하고 학교급식을 통해 자라나는 어린아이들과 젊은 세대가 전통의 맛을 이어가는 식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잊혀져가던 전통 소두장이 최명희 명인으로부터 새롭게 탄생하여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한줄 답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