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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R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 38호 유정임

[기획시리즈 VOL1] 시간을 빚고 전통을 품다_대한민국 식품명인을 만나다 : 김치편

2025.06.12 | 조회 : 3,461 | 댓글 : 0 | 추천 : 0

 

 

항아리 앞에서 시작된 인연유정임 김치 명인 이야기

 

시간 속에서 맛을 빚는 음식김치. 그 한 포기 안에는 자연의 흐름과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오늘 우리는 그 김치의 철학을 지켜온 한 사람, 유정임 김치명인을 만났다.

 

경기도 양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 곁에서 김치를 익혔다. 지금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8호로서, 자연과 전통의 조화를 담은 김치를 담그고 있다. “김치는 살아 있습니다.” 조용히 던진 그의 첫마디에는, 수십 년 손끝으로 쌓은 내공이 깃들어 있었다.

 

 

 

 

김치와 유정임 명인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유정임 명인의 대답은 추억으로 가득하다. “어릴 적 항아리 앞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김장을 하시면 항아리 위에 우거지를 덮고, 그 위에 계란 껍질을 덮으셨어요. 그 김치는 봄에도 아삭했죠.”

 

김장은 명인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추운 겨울, 온 동네가 함께 어울리던 공동체의 기억이었다. 배추 백통씩 절이고, 손을 호호 불며 우물가에서 김장을 도우며 얻어먹던 김치 맛. 그것은 어릴 적 가장 맛있었던 김치로 남아있다.

 

그 추억은 김치를 담그는 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왔고, 유정임 명인은 자신이 받은 그 마음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손에서 손으로세대를 잇는 전통 김치의 길

 

유정임 명인의 김치 기술은 친정어머니 진은분 여사로부터 시작된다. 양가집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엄격한 시어머니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받았고, 유정임 명인 역시 이 방식 그대로 배워 수원 세류시장에서 15평 규모의 김치 가게를 시작했다.

 

1986, 그는 김치 제조회사인 풍미식품을 설립했다. 현재는 아들 김병국, 김수봉 두 전수자가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식품 가공·공학을 전공하고, 김치 제조 현장에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김병국 전수자는 어머니의 손맛은 레시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재료, 같은 비율이지만 어머니의 김치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무게를 익히는 데 20년이 걸렸다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지금도 묵묵히 연습하며, 자신만의 손맛을 만들어가고 있다.

 

 

 

"포기김치로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되다"-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비법은 재료

 

대한민국식품명인 유정임 명인의 아침 풍경은 과거 첫 장사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다. 출근하면 곧장 현장에 내려가 배추가 잘 절여졌는지 확인하고, 깍두기를 얼마나 담그고 열무를 몇 단이나 다듬어야 하는지를 점검한다. 누군가는 이제는 현장에서 물러나도 되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명인은 여전히 김치를 매일 맛보고 모든 것이 본인의 손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한다고 말한다.

 

 

 

 

 

제가 매일 밭을 이곳저곳 다니니까 산지와 농민들 사이에서 제가 제일 많이 밭에 다니는 여사장으로 소문나있어요. 저한테 배추들은 아이랑 마찬가지예요. 늘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만 제멋대로 자라지 않고 옹골차게 자라거든요. 그래서 꼭 부모님이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학교에 인사하러 가는 것처럼 저도 농민들에게 가서 잘 컸나 보고 제대로 퇴비도 보고 약 관리도 물어보고 해요.새우젓도 마찬가지로 아직도 경매에 참여해요. 받자마자 토굴에 넣어서 숙성되는 과정까지 제가 다 동행하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요. 고창 고추밭도 매번 가는 이유가 최근에 사람들이 매운 김치를 선호하지 않으니까 종자를 확인하러 자주 방문해요. 그러다 보면 올해는 고추 농사가 잘되었나 먹어 보게 되고요. 내 입에 들어갈 수 없는 재료로 만든 김치는 사람들에게 주면 안 돼요. 제 신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신경을 쓰고 관심을 줘야 우리 농민들도 날 봐서 한 번이라도 더 봐주죠.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우리 몸을 위한 것" - 특별한 명인의 육수

 

보통 5개 미만의 재료가 들어가는 육수에 비해 명인의 육수에는 11가지의 재료를 통해 감칠맛을 극대화 시켰다. 이를 통해 각 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이 비결이다.

 

처음에는 물이랑 다시마, 멸치 정도만 넣고 일반적인 육수랑 같았어요. 근데 김치를 계속 만들다 보니 다시마를 언제 넣느냐에 따라서 멸치를 어느 정도 넣느냐에 따라서 김치 맛에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렇다면 육수에 더 좋은 재료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 넣어 본 건 멸치였어요. 된장찌개에 멸치 육수만 사용해도 맛이 훌륭하잖아요. 그렇게 육수를 만드니까 확실히 달랐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홍합도 넣고 새우, 양파, 표고버섯 등을 추가하기 시작했죠. 육수를 끓일 때도 김치를 만들 때도 저는 늘 재료들을 믿습니다. 우리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건 모두 우리 몸에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개발된 저만의 육수 비법이죠. 근데 유의해야 할 점도 많아요. 다시마를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육수가 혼탁해지고 끈적해져요. 그런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을 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의 김치, 앞으로의 김치전통을 잇고 미래를 준비하다

 

김치 소비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에 대해 두 아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들, 외국인에게 낯선 맛을 고려해 유정임 명인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레시피 개발에도 힘써왔다. 그 결과 김치 제조 관련 등록 특허 9, 출원 특허 6, 딸기 고추장 관련 특허 2건 등 다양한 신제품이 개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오미자 물김치, 고영양 김치, 반건조 재료 활용, 외국인용 김치 소스 등 다양한 시도가 있다. 이는 단순한 변형이 아닌, 전통의 정신을 담아낸 확장이다.

 

 

전수자 김병국씨와 장남 김수봉씨

 

김치의 과학화, 스마트한 전통

 

풍미식품은 전통만 고수하는 기업이 아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삼성전자,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김칫소 넣는 과정을 자동화해 생산성은 5배 향상, 불량률은 84% 감소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술은 전통의 방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맛의 평준화와 효율성 향상에 기여했다. 이는 더 많은 이들에게 맛있는 전통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다.

 

 

명인의 김치, 그 너머의 가치

 

1998년 수원시 요리자랑대회 수상을 시작으로, 2002MBC 김치 명인 선정, 다양한 협회 활동까지. 유정임 명인의 걸음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D사의 김치냉장고 자문, 향토 음식 보존, 궁중음식 연구 등 그의 노력은 김치라는 음식에 담긴 문화, 과학, 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 명인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명인의 손은 명인의 인터뷰를 빌려 표현할 수 있다

 

저는 손맛을 사람에게서 균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며느리를 새로 들인 집에서 된장이나 간장 같은 맛이 달라졌다, 맛이 없어졌다, 그런 것도 비슷한 맥락 같아요. 이 손맛이라는 것은 지혜와 살아온 삶을 통해 손에서 보이지 않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일종의 감각이죠. 물론 사랑과 정성도 중요하겠지만, 세월을 견딘 손만큼 완벽한 저울은 없다고 생각해요.”

 

 

 

 

김치는 곧 문화입니다”-15평에서 세계로 향하다

 

1986, 자본금 1천만 원. 문을 닫은 김치 공장을 인수한 한 여인의 손끝에서 대한민국 전통 발효식품의 운명이 새롭게 써지기 시작했다. 김치 명인 유정임. 그녀의 시작은 단출했지만, 철학은 깊었다. "김치는 우리 조상의 얼이 담긴 음식입니다. 세계인이 이 맛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녀는 단순히 전통을 고집하지 않았다. 전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제조 특허, 스마트 HACCP 자동화, 생산 혁신 시스템 등을 도입하며 효율성과 품질을 함께 잡았다. 그 결과, 초기 15평 규모였던 공장은 수원 오목천동에 위치한 2,000평 규모의 현대식 김치공장으로 성장했다.

 

 

전통을 과학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녀의 김치는 이제 세계인의 밥상 위에도 오른다. 2009년 기준, 호주로만 월 15톤 수출, 일본과의 수출 상담도 80% 이상 완료하며 유럽과 미국, 동남아로도 수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김치의 맛이 낯선 이들을 위한 맵지 않은 김치개발, 현지화 레시피 연구 또한 병행하며, 김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100년 후에도 김치는 한국인의 자부심이어야 합니다.”- 명인의 꿈

 

"광화문에서 세계 각국 대사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싶어요. 김치를 담가 각자의 나라에 보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김치를 파는 것이 아닌, 문화로 전하고자 한다.

직접 설립한 김치문화관에는 유치원생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웨덴, 미국, 일본, 홍콩 등 다양한 국적의 방문객들이 김치의 유래와 영양학적 가치를 배우고, 직접 담가보는 체험을 통해 김치의 맛이상을 경험한다. 에버랜드 외국인 체험장 운영,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강의, 전국 농업기술센터 출강 등도 병행하며 김치의 교육자 역할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김치의 담그다()’라는 본래 의미가 점차 잊혀지고 사먹는 음식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그녀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며 김치를 사 먹더라도 그 과정과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정임 명인은 말한다. “우리가 기록하지 않으면, 전통은 사라집니다. 지금 이 순간도 소중히 기록되고 후손들에게 이어져야 합니다.” 전통은 박물관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손끝에서, 맛에서, 교육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녀의 김치는 그 자체로 기록이며, ‘전파이고, ‘약속이다.

 

김치가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오를 그 날까지, 유정임 명인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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