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R
[2024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 18호 야생작설차 명인 신광수
<야생차나무를 향한 한없는 사랑>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걸쳐있는 조계산은 해발 884m의 장군봉을 주봉(主峯)으로
동서로 봉우리들이 뻗어가며 절경을 이룬다. 그 서쪽에는 송광사가 동쪽에는 선암사가 오롯이 들어서 있다.
신광수 명인은 그 오른쪽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뻗어내려 무학마을 앞 하천에 이른 곳에 야생차밭을 조성하였다.
명인의 차밭은 해발 약 750m에 위치하는데 앞쪽으로 푸른 상사호가 펼쳐져 있어
아침이면 호수에서 발생한 안개가 밀려와 수분을 공급해주는, 차 재배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재래종 야생차나무에서 찻잎을 얻어 아홉 번을 덖고 말리며 얻는 고유의 전통차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인 순천의 야생작설차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명인은 바란다.
또, 차를 통해 각성하고 차를 즐기며 행복을 느끼는 우리의 차문화가 올곧게 지속되기를 명인은 소망하고 있다.
<신광수 명인 연혁>
<신광수 명인 스토리>
작설차와 선암사
천년고찰 선암사는 신광수 명인이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를지낸 곳이다. 명인이 생활하던 당시에는 스님이 서른 명에서 마흔 명까지 계셨다. 스님들은 아침, 점심,저녁 공양이 끝난 뒤와 취침 전, 이렇게 하루에 네 번은 반드시 차를 마셨다. 명인은 다각(茶角)으로서 채엽, 제다는 물론 차를 우려내어 스님들에게 올리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신광수 명인의 아버지는 선암사 주지이셨던 용곡 스님이다. 선암사에서는 오백 년 전부터 계승되고 있는 구증구포 제다법으로 차를 만들어왔다. 신광수 명인은 아버지 용곡 스님으로부터 구증구포 제다법을 직접 전수받았다.
순천 선암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사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10)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주위로는 수령이 수백 년 되는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울창하고 보물로 지정된 아치형의 승선교와 대웅전 좌우의 삼층 석탑도 기상을 뽐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암매가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76년부터 조계산 오른쪽 산줄기 끝자락에 약 750고지의 땅이 차나무가 성장하는데 최적지임을 확신하고 매입에 들어갔다. 세계 3대 명차인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 우바, 중국의 무이차가 1,000고지가 넘는 고산지대에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한국은 위도가 높아서 이 정도의 고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땅을 매입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매입하려는 땅의 범위가 넓으니 땅 주인이 70명 정도에 달했다. 그들을 설득하는데 7~8년이 소요되었다. 십오만여 평에 이르는 토지를 매입하면서 만만치 않은 부채가 생기고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차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무서운 생각도 들었으나 눈을 감으면 차의 본성이 숨 쉬는 아름답고 생기 가득한 차밭이 그려져서 멈출 수가 없었다. 순천을 세계적인 명차 산지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 가슴이 뜨겁던 시기였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그는 점점 차에 빠져들었고 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때로 홀로 차밭에 올라 지난 일을 돌아보면 엄청난 면적의 차밭과 그것을 관리해온 세월이 믿기지 않고 꿈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자신의 과욕을 탓하기도 하지만 차와 함께하는 시간이 고되기보다는 온전한 기쁨으로 다가오니 행복한 멍에에 가깝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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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야생 작설차의 부흥
선암사의 차 계보를 따라 오백 년 전부터 이어온 구증구포 제다법은 말 그대로 아홉 번을덖고 말리는 방식이다. 한번 덖을 때마다 수분이 10% 정도 감소하고 마무리 덖음까지 마친 차는 수분이 4% 정도가 되어 가장 향이 좋고 맛도 좋으며 아홉 번을 우려 마실 수 있는 차가 완성된다. 혹자는 아홉 번을 덖으면 찻잎이 남아나겠냐고 묻기도 한다. 명인이 다른 녹차잎을 얻어다 덖어보니 부서져서 구증구포를 할 수 없었다. 생산하고 있는 야생찻잎은 개량종 녹차에 비해 두껍고 엽성이 강해 구증구포가 가능하니 순천의 야생차와 구증구포 제다법이 잘 맞는 것이다. 다원에서 차를 수확하는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명인의 차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의 저명한 다인인 오가와 세이지, 오가와 야에오 부부는 1978년 주일미국대사관을 통해 우연히 선암사의 작설차를 입수한 후 그 맛의 특유함에 이끌려 1982년과 1983년 선암사를 방문하고 용곡 스님과 신광수 명인을 만나기도 했다. 1982년 일본 세계다류품평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대사관 직원이 우연히 명인의 차 맛을 보고 품평회에 출품한 것이 최고의 녹차로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 유력인사는 물론 세계적인 다인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1992년 10월 남북 고위급 회담차 방문한 연형묵 북한 총리와 청와대 만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차로 소개했다. 이후 그는 1999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18호 야생작설차 부문 명인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또 자랑스러운 전남인상을 수상하고 순천시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다. 2004년 일본에서 한국 전통차 체험단이 꾸려졌다. 2006년 일본에서 다도 시연 및 한국 차문화 전파 공연이 년 3~4회 열렸다. 일본으로 수출길이 열리면서 억대의 연간 매출이 시작되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단체여행을 오기도 하고 세계적인 다인들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국내외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는데, 2007년 초여름 일본 농림수산성 다업연구관과 도쿄대 지질학 분야의 교수 일행이 다녀간 후 쓴 책에 명인과 차밭이 소개되기도 했다.
명인의 차는 일본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욘사마’라는 별칭을 가진 배우 배용준의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중 ‘차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선암사를 소개하고 신광수 명인의 작설차의 한국의 명차로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야생 작설차 제조 방법>
채엽
신광수 명인이 생산하는 차의 제품은 해마다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주요 차 제품은 여섯 가지 정도이다. 춘분 전후 추위와 눈을 이기면 솟아난 좁쌀 크기의 새움을 채취하여 법제한 차로 고려 때부터 최상등급으로 알려진 차는 ‘승설’이다. 한식인 청명 전후 채취한 찻잎으로 정성을 다하여 법제한 차로 깊은 향과 오미를 갖춘 것은 ‘무애’이다. 곡우 전 찻잎 크기가 참새의 혀 정도일 때 채취하여 법제하였으며, 향, 색, 미가 뛰어난 것은 ‘진향’이다. 곡우와 입하 전 1창 2기의 찻잎을 엄선 채취하여 법제한 것은 ‘난향’이다. 입하와 소만 전에 채취한 찻잎으로 향과 맛이 독특한 것이 ‘청향’이다. 소만과 망종 전에 딴 찻잎으로 법제하여 순수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순향’이다.
구증구포제다법
찻잎은 우려 마시고 난 다음에도 원형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눋거나 타지 않게 덖어야 한다. 전체 과정을 보면, 처음 수분함량이 많은 상태의 찻잎을 덖을 때는 참나무와 감나무로 솥의 온도를 높인다. 6~7회 덖음이 끝나면 수분 함량이 20%쯤으로 낮아지면 오동나무로 솥의 온도를 조절한다. 200℃ ~230℃ 정도의 온도에 마무리 덖음을 한다.
온도를 판별할 때는 가마솥 안에 손을 넣어 손바닥을 휘저어보며 감지한다. 물 한두 숟가락을 솥 안에 떨어뜨려 파지직 내지 파바박 하는 튀는 소리와 물이 증발하는 시간의 정도를 관찰하여 적정온도 가 확인되면 찻잎을 넣는다.
구증구포 작설차 법제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솥의 온도를 맞추는 불 조절이다. 용곡 스님은 차 덖는 가마솥의 불 조절만 최소한 3년은 배워 익혀야 한다고 하였다. 덖는 시간 동안은 아궁이 곁을 떠날 수 없고 불길 관찰을 잘 해서 덖음의 횟수에 따르는 솥의 온도도 착오 없이 잘 가늠해야 한다. 몇 번 덖었는가는 몇 번 우려 마실 수 있는가와 비례한다. 구증구포 작설차가 아홉 번 열 번을 우려 마셔도 그 맛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
는 이 법제 방법 때문이다.
<명인 신광수의 다도>
격식을 차려 다관과 찻잔을 데우고 차를 제대로 끓여 먹으면 확실히 맛이 좋다. 다구를 갖추고 사용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명인은 사람마다 다구를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그럴때는 굳이 다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차의 향과 맛에 집중할 수 있는, 마시는 사람의 정신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광수 명인은 차를 마실 때는 다구를 갖추는 것보다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구 욕심이 많지는 않은데, 오랜 차생활로 들이고 선물 받은 도예가의 작품이 어느새 제법 모여 다실의 운치를 더한다.
"차는 나의 마음과 정신을 자극하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좋은 차를 잘 우려내어서 마시면 그 차의 성분과 향미가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지요. 차를 마시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 차의 작용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성껏 차를 우려 마시게 됩니다. 선다일여(禪茶一如), 선(禪)과 차(茶)가 하나로 귀결되는 경지라는 말도 하는데요. 차를 마시는 사람마다 습관도 다를 테고 목적도 다르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불교문화 안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생활화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차는 나의 인생이고, 또 아버지 같은 존재이면서도 부처에게 가는 그런 마음까지 들게 하는 것입니다."
<야생 작설차의 미래>
신광수 명인의 다원에서 변화는 자녀들의 몫이다. 신선미 전수자는 신광수 명인의 둘째 딸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여 한때 명인의 야생작설차의 해외 판매를 돕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차 덖는 것을 함께 했으며 대한민국식품명인 야생작설차 품목의 전수자가 되었다. 신선미 전수자가 생각하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야생작설차의 전통은 차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야생차나무밭을 지키는 것과 구증구포 제다 방법을 지속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다양한 시도를 하고 발전시켜나가야겠지만 차를 만들고 즐기는 정신문화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신선미 전수자는 변화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블렌딩 티를 출시하기도 했다. 신광수 명인의 차 맛을 해치지 않도록 지나친 가향은 하지 않고 순수차를 섞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신선미 전수자는 전통 제다방식으로 만든 아버지의 야생작설차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젊은 소비층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꽃차와 블렌딩 티 등을 개발하고 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아들 신희찬 역시 야생차 나무가 보유하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활용한 상품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누구나 야생차나무 밭을 둘러보고 채엽과 제다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6차 산업 상품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매년 봄이면 모두 힘을 합하여 야생차밭을 오르내리며 채엽을 하고 아버지와 구증구포로 제다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변화를 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통을 흔들림 없이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봄 제다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과제이다. 순천 선암사의 정신의 맥과 토양에서부터 나오는 야생의 맥이 합해져 전해진 야생작설차는 새로운 부흥기를 준비하고 있다. 명품차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온 기세를 몰아 한국의 가장 아름답고 고유한 명품차의 반열에 오를 날을 오늘도 준비하고 있다.
"차밭을 일구고 관리하며, 채엽하고 법제하며 살았습니다.
선친이신 용곡 스님의 곁에서 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슴에는 선친의 뜻과 마음이 항상 숨 쉬고 있어
차와 함께 그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구증구포 작설차를 매년 생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고 또 제 몸에 너무나 익숙한 일이기도 합니다.
차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선친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저도 아름다운 차의 세계로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신광수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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