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R
[ 2024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다 ]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 40호 동국장 명인 한안자
<좋은 인연으로 숙성되는 맛, 동국장>
장 담그는 법을 언제부터 배웠던가,
돌이켜보니 나의 모든 삶의 궤적에 장이 존재해왔습니다.
여섯 살배기 때부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본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장 담그는 모습,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집안 간의 약속으로 혼인의 연을 맺은 시가에서 본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장 담그는 모습,
그 모습은 고스란히 나에게 이어졌고 그렇게 장과 함께 50년의 세월이 무르익었습니다.
간장과 된장이 만나 동국장이 되는 것처럼, 동국장에는 수많은 만남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내 삶을 함께한 운명적인 만남들. 주어진 운명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명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 한안자 명인 연혁 >
< 한안자 명인 스토리 >
명문가 여식의 요리사랑
“우리 친정 집안은 조선 성종의 어머니였던 인수대비의 후손으로 청주 한씨 가문 중에서도 광주 사직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해 특별히 사직촌 한씨라 불렀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 30대 손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한씨 집안 고유의 전통 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제40호 ‘동국장 제조·가공 명인’으로 지정된 한안자 대한민국 식품명인(이하 명인)은 청주 한씨로 조선 왕후들을 많이 배출한 사직촌 한씨 가문에서 7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라남도 교육장을 역임한 교육자였기 때문에 엄격하고 집안의 전통을 중시하는 가풍을 지켜왔다.
나주 오씨인 어머니와 화순 정씨인 할머니, 그리고 청주 한씨 친척 아주머니 사이에서 자란 명인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각종 제사와 시제로 다양한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명인의 가문은 신문에 실릴 만큼 명문가로 유명한 집안이었고 광주 구동향교 명륜당 건물이 불에 탔을 때 소실된 건물을 지어준 역사도 있다고 한다.
명문가의 집안 행사는 1년에 수차례나 치러야 했고 어머니가 한씨 집안 고유의 전통 장 담그는 모습과 다양한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비법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성장했다.
또한 외할머니가 장을 잘 담갔는데, 명인은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장 담그고 장아찌 만드는 비법을 어깨로 너머로 배우면서 우리 전통요리에 흥미를 느꼈다.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된장 저장법, 음식의 저장과 숙성, 조리와 간 맞추기, 발효가 미치는 여러 가지 맛을 몸소 느끼면서 연구했고 우리 전통식품에 대한 열정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된장과 간장 등 전통식품의 다양성과 우리 발효 식품의 우수성을 확실히 깨닫고 동국장과 만나는 숙명을 맞이하는데,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당시 명인의 시가는 방앗간을 운영했다.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시절이어서 직원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직원들의 끼니를 챙기는 안살림은 시할머니 김복민(1893~1971) 님과 시어머니 윤락순(1913~1976) 님의 몫이었다.
시어머니인 윤락순 님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9대손으로, 해남 윤씨 사대부가의 장을 만들고 발효해 숙성하고 저장하는 비법을 이어온 금손이었다.
명인은 학교에서 퇴근하면 틈틈이 시어머니로부터 해남 윤씨 집안의 장 담그는 법에서부터 김치 만들기에 대해 배웠다.
한편으로 명인은 시어머니가 간직한 우리나라 전통식품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아 집안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었다.
지난 오랜 세월을 이어온 집안의 전통과 시어머니의 훌륭한 음식솜씨를 사장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예전보다 살림이 줄었지만 방앗간과 얼마간의 땅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로 전통음식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명인은 35세가 되던 해에 100년 묵은 씨간장과 함께 동국장을 비롯한 전통식품 만드는 법을 시어머니에게 전수받기로 결심했다.
특히 시어머니 윤락순 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된장이라 할 수 있는 동국장의 전통비법을 물려받은 숨은 명인이었다.
“연동리 해남 윤씨 가문에서는 예로부터 장을 담그는 비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어요. 여러 장 가운데서도 동국장은 시어머니가 특히나 귀하게 여겼던 장이었지요. 시어머니 지시가 떨어져야 먹을 수 있는 허가품이었고, 이 집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명인은 시어머니의 동국장 담그는 비법을 전수받는다는 것을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청주 한씨 집안과 해남 윤씨 집안의 전통음식 및 장류 제조 비법까지 양가의 비법을 모두 전수받으면서 조금씩 명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 동국장이란? >
살아있는 장, 생장의 맛을 되살리다
명인은 친정과 시가 두 집안의 비법을 모두 배우면서 우리 전통 간장에 대한 공부를 병행했다. 현대에서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전통 간장에 대한 다양한 책을 섭렵하며 이론적 바탕을 쌓아갔다.
이처럼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갖춰나감과 동시에 친정과 시댁에서 배운 전통 장 제조 비법을 응용하여 조선시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동국장, 그 ‘생장(生醬)’ 맛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명인의 오랜 연구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동국장은 말 그대로 생장, 살아 있는 장이다. 일반 된장처럼 메주를 발효시켜 끓이거나 간장을 따로 내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다. 발효균이 살아 있는 건강한 생된장‧생간장인 셈이다. "
그리고 알이 굵고 고른 품질의 대두를 발효시킨 메주를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사용해 맥반석 항아리에서 숙성한 후 용수를 넣어 간장과 된장을 걸러 내는 가장 전통적인 장 제조 방법이다.
청주 한씨 가문, 나주 오씨 가문, 밀양 박씨 가문, 해남 윤씨 가문의 비법과 솜씨가 한데 녹아든 명인의 손맛은 종갓집 장맛을 잇는 며느리로 머물기는 아까웠다.
명인 역시 어떻게 하면 동국장을 비롯한 우리 전통식품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 전통식품 맛을 즐기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고민 끝에 명인은 우리 전통식품 고유의 맛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전통식품 가공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 동국장의 비법 >
동국장을 만드는 주재료는 콩이다. 수입콩은 절대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대두만을 사용한다. 주변 농가에 명인이 직접 씨앗을 나눠주고 계약재배한다.
국산콩만 고집하는 이유는 메주콩은 끈적끈적해야 하는데 수입콩은 잘 흩어지기 때문이다.
메주는 일반적으로 콩수확이 끝나는 12월 초(12월 20일 이전) 메주를 빚는다. 동국장에 쓰는 메주는 어른 주먹 두 개 정도 크기로 빚는다. 일반 메주보다 훨씬 작은 크기다.
정성껏 빚어진 메주는 먼저 햇볕에 ‘겉말림’을 한다. 겉말림은 메주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겉말림을 한 메주는 발효실에 들어간다. 메주는 볏짚이 아닌 맷방석 위에 옹기종기 넣고 통대나무 선반에 올려 말린다.
명인만의 독특한 증자(蒸煮) 방법이다.
발효를 끝낸 메주는 곰팡이를 털어내어 항아리에 넣는다. 그리고 살균을 위해 끓인 소금물을 넣는다. 이 부분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끓이는 일반 간장과는 다른 점이다. 동국장 특유의 살짝 익힌 맛이 여기서 나온다.
소금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소금만큼은 해남 지역인 고천암 해안가 염전에서 생산하는 3년 된 천일염을 고집한다.
메주는 소금물과 함께 항아리 속에서 한번 더 발효의 시간을 거친다.
지금까지가 사람의 몫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자연의 몫이다.
정오에는 햇빛을 받고 조석에는 그늘이 지는 곳, 강한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항아리를 놓고 차분한 숙성의 시간을 갖는다.
장은 담그고 나서도 열흘에 한 번씩 입구를 닦아주면서 관심을 갖고 관찰해야 한다.
동국장은 30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고 60일이 지나면 비로소 먹기 좋게 익는다.
씨간장 항아리는 5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간장소금 결정이 생성되어 항아리 아래 가라앉다 보면 항아리에 금이 가서 간장이 샐 수 있다.
또한 오래된 항아리는 간장이 스며들어 아무리 닦아도 깊이 들어간 간장맛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명인은 20여 년 전부터 맥반석 항아리로 모두 교체해 사용하고 있다. 맥반석 항아리는 간장이 배지 않아 장맛이 훨씬 좋아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간장은 오래 먹기 위해 끓여내지만, 해남 동국장은 그렇지 않다. 간장과 된장이 섞여 걸쭉한 상태 그대로 먹는 ‘생장’이다.
생장의 가장 큰 장점은 장맛이 변질되지 않도록 숙성시키는 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청장은 1년에서 3년, 진간장은 3년에서 5년이 걸리는데 동국장은 3개월 안에 먹을 수 있다.
아울러 명인의 동국장에는 집안에서 내려오는 100년 넘은 씨간장을 부어 겹장하기 때문에 세월의 깊은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겹장은 항아리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장맛을 고르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염수와 메주의 비율이 3:7 정도로 맞는 항아리를 골라 한꺼번에 빼서, 간장과 된장을 잘 혼합시키면 최종적으로 시판되는 동국장이 완성된다.
잘 발효된 동국장을 보면, 흡사 진한 커피색에 메주 덩어리가 뭉글뭉글 흩어져 있다. 이른바 ‘왜간장’을 섞은 양념간장 같은 독특한 맛이다.
명인은 동국장 제조과정에서도 설탕이나 조청 등 특별한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오직 최상질의 콩과 소금을 고르고, 좋은 항아리에 담고, 물과 온도를 정확히 맞추고, 메주를 잘 빚는 제조과정 하나하나에 정성과 혼신을 바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타이밍과 비율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지게 하는 명인만의 터득한 감(感)과 경험, 그것이 동국장 맛의 비결이다.
“나는 장 만드는 과정을 ‘느린 숨, 깊은 발효’라고 표현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 허투루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 장맛이 깊어진다는 거예요.
정성을 다하려면 마음이 정갈해야 하고, 마음을 다해야 좋은 음식이 나온답니다.”
< 깊어가는 장맛, 아름다운 인연 >
임대웅 전수자와의 인연, 그리고 미래
“인생 전부를 바쳐온 장 담그기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운명적인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나의 손맛이 전수자의 손끝에 전해지며 우리 전통 장의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꼬이는 것 같다가도 이리도 풀리는 것을 보니, 동국장은 정말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맞나 봅니다.”
보통 장인이나 명인들은 전수자로 자식이나 혈연관계인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명인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전수자로 선택했다.
그것도 깊은 인연이 아닌, 오래전 잠깐 만난 짧은 인연을…
그 인연은 어느새 세월을 돌고 돌아 20여 년을 거슬러 운명처럼 다시 찾아왔다.
전수자인 임대웅 대표는 식품공학과 출신으로 1997년 귀빈식품에 입사해 명인과는 사장과 직원 사이로 처음 만났다.
잠깐의 인연을 거친 후 20여년 후 고향에서 다시 재회하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사업이 안 좋아진 상황 속에서 명인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임대웅 대표는
동국장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귀빈식품을 인수하고 '유민식품 농업회사법인'이라는 이름으로 동국장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유민식품’이라는 새로운 사명으로 다시 영업을 재개한 임 대표는 명인에게 동국장 제조 비법을 전수하면서
회사를 재건하고 우리 전통 장 문화를 계승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임 대표는 명인의 동국장을 알리기 위해 2023년 귀빈의 전통장 선물세트를 기획 및 출시하여 영업을 시작했고
2024년에는 체험 및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귀빈의 전통장을 홍보하는 해로 계획했다.
교육사업에 힘써온 경험을 살려 유민식품 사업장에 체험학교를 조성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고객들을 만날 생각이다.
“전통식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전통식품을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세대들은 일본 미소 맛에 길들어 우리 된장 고유의 맛을 오히려 꺼리기도 합니다.
우리 전통 장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빚어지는지 그리고 어떤 맛을 만들어 내는지 흥미를 갖게 된다면,
조금씩 그 가치를 깨닫고, 마침내 우리 전통 장을 좋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류와 더불어 K-Food의 비상과 함께 세계인이 주목하는 건강한 조미료, 우리나라 전통 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지금,
명인과 임 대표가 만나 빚는 ‘동국장’ 그 아름다운 인연은 감칠맛 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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