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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화의 맛있는 트렌드_포스트 로컬리즘, 블그레(blgre)
2023.06.12 | 조회 : 38,706 | 댓글 : 0 | 추천 : 0
이윤화의 맛있는 트렌드
포스트 로컬리즘, 블그레(blgre)

오피니언 리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가로수길은 코로나 시대에 고난의 폭격을 맞은 대표적인 거리 중에 하나다. 대기업의 안테나숍이 들어와 있던 대로 빌딩들은 코로나 기간에 임대 플래카드를 내건 채 공실 유리벽으로 알몸을 내보였다.
하지만 쓸쓸한 대로변을 한 꺼풀 벗어나 사이사이 뻗어있는 세로수길 골목에 들어서면 여전히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이 동네의 진짜배기 맛샘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 자리한 외식 공간들은 오너의 개성과 배반 없는 ‘찐단골’의 두터운 층을 배후로 코로나 시기를 적잖게 이겨냈다. 잔가지로 뻗어나간 세로수길은 어느새 골목에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며 생기를 더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도맡고 있다.

코로나 거리 두기가 옅어질 즈음에 세로수길 좁은 골목에 독특한 빌딩이 혜성같이 고개를 내밀었다. 화이트 톤으로 무장한 독특한 계단 모양 건물의 외관 자체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의 1층엔 씨잌 아이스크림 가게가, 2, 3층은 셀프 포토존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드나들 것 같은 공간에서 내 모습을 남기는 신비한 연출도 가능해 보인다.
이런 분위기 건물이라면 MZ세대에게 어필할 만한 생면 파스타나 스페인 타파스 등 이국적인 소재의 외식 공간이 있을 것 같은데 4층 레스토랑은 여느 한식당보다 더 제대로 된 우리 한식의 깊은 매력을 품어내는 ‘블그레’가 자리하고 있다. 블루, 그린, 레드의 조합으로 만든 블그레는 빛의 3원색의 교집합인 화이트로 꾸며져 천정과 벽면 모두 새하얗다. 이런 인테리어에서 만나게 될 한식이라니, 무척 궁금해진다.
쑥증편과 구본일 간장

봄쑥이 들어간 따끈한 증편 옆에 들기름에 발사믹이 들어간 종지가 나온다. 이어 셰프가 와서 스포이트로 한 방울 떨어뜨려 준 것은 다름 아닌 ‘간장’이다. 파주 장단콩의 독특한 맛을 살려‘참발효어워즈’간장 부문에서 수상을 한 ‘구본일간장’이다.
고소한 들기름과 깊은 단맛의 발사믹(포도식초)에 우리 전통 간장 한 방울. 이탈리아 발효산물과 한국 전통의 발효장의 만남이다. 봄쑥 증편은 계절감과 설렘을, 발효 소스의 유니크한 조화는 이어지는 음식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준다.
단새우물회와 블그레갈비

‘단새우물회’를 주문하며, 새콤달콤한 고추장 빛깔 물회를 상상했다. 그런데 발효된 논산초록딸기와 대저토마토소스가 곁들여 나왔다.
소고기 스테이크엔 된장소스와 참기름 파우더, 우엉 퓌레가 메인 요리를 빛나게 하고 있다.
미역슈디저트

이런 방식의 음식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매일 먹는 나의 한식 밥상을 돌아다보게 한다. 심지어 디저트로 튀긴 미역이 소복이 얹어진 슈크림 빵이 나온다. 생일국에서 보는 친숙한 미역은 한국인에게 삶의 친구 같은 식재료인데, 그 미역이 오늘은 달콤한 입가심이 되었다.
블그레의 김봉수 셰프는 유독 한식을 사랑해왔다. 한식의 근원은 다름 아닌 장(醬)과 로컬 식재료라고 여겨 원물의 생산과정과 발효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방방곡곡 어디든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
공부꾼 셰프다! 그것도 모자라 향후 시골에서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맛집의 꿈을 실현하고자 귀촌 학교를 다니며 농업현장의 생리까지 익혔다. 그런 열정이니 블그레에서는 우리 음식은 물론이고 전통주와의 어울림 시도가 다양하다. 최근엔 지역의 음식 명인을 모셔와 김셰프와 함께 쿠킹클래스 또는 식문화 만찬도 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식품᭼외식업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바로 음식이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식품 및 외식업계에서의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메뉴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에서는 창녕 햇마늘이 들어간 창녕갈릭버거를 시즌 메뉴로 판매하기도 하고 오비맥주는 100% 국내산 쌀을 사용한 신제품 ‘한맥(HANMAC)’을 출시해 지역 농가와의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
블그레 한입 요기

대기업의 지역 상생은 파워풀한 광고의 뒷받침으로 매출을 비롯하여 큰 성과 및 흔적을 남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일개 식당의 움직임은 작은 벌 한 마리가 이 꽃 저 꽃을 분주히 옮겨 다니며 수정하는 외로운 홀로 게임 같을 때가 많다.
하지만 작은 벌에겐 내가 앉고 싶은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권한이 있다. 김봉수 셰프를 만나 보면 가고 싶은 곳에 날아가 수정하는 한 마리의 자유 벌을 보는 듯하다. 최근 지구 오염으로 세계적으로 벌 개체가 줄어 걱정이 늘고 있다. 지구상의 자연 벌도 김셰프같은 한식의 소신 벌도 늘어나길 바라본다.
블그레
서울 강남구 논현로175길 101-4 stairs빌딩 4층
0507-1369-7940 @blgre.sinsa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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