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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화의 맛있는 트렌드_외식에서 즐기는 법고창신(法古創新)
2023.05.22 | 조회 : 25,345 | 댓글 : 0 | 추천 : 0
이윤화의 맛있는 트렌드
외식에서 즐기는 법고창신(法古創新)

리메이크(remake)! 이미 발표된 원작의 의도를 잘 살리면서 일부 재수정을 하여 다시 수면으로 부각시키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음악, 영화 분야에서 이 리메이크는 시대와 세대를 잇는 불멸의 소재로 쓰인다. 음식 분야에서도 옛 음식을 복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옛 음식을 복구하여 추억을 소환하는 레트로(retro)가 있고 현대의 센스를 얹어서 세련미를 가한 뉴트로(new + retro) 리메이크도 있다. 오늘은 진지한 뉴트로 상품으로 고조리서 복원 음식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시의전서 표지와 부븸밥, 쇵치국에 대한 기록

1919년 경북 상주 군수로 부임한 심환진은 반가(班家)에서 소장하고 있던 음식 서적을 빌려 상주 군청이라고 쓰여 있는 괘지에 필사하게 하여 책으로 남겼다. 이게 바로 시의전서(是議全書)로, 현재 저자 미상으로 필사본만 남아 있다. 이 책이 상주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11년 TV프로그램 ‘진품명품’을 통해서였다.
전라도에 살던 소장가가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자 가지고 나온 것. 상주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마냥 큰 역사의 궤적을 찾은 거나 진배없었다. 책에 담긴 문장들에 경상도 사투리가 두드러진 것을 보아 소개된 음식들이 경상도, 그중 상주의 내림 음식일 확률이 컸다.
실제 집필 시기가 1800년대 말로 추정되는 시의전서에는 무려 400여 종의 음식이 소개되어 있고 책 뒷부분에는 상차림 구성까지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되었다.
백강정 외관과 낙동강

상주에서는 시의전서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책 안의 음식을 해석하고 실제 복원하며 현시대에 어떻게 알릴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연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 시의전서 복원만을 표방하는 전문 식당도 오픈했다. 아름다운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갱다불길에 있는 커다란 한옥 식당 백강정이 그곳이다.

한옥 내부는 신발은 벗지 않아도 되는 입식 테이블 구조이며 여러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긴 복도가 있다. 어느 방을 들어가도 창문 밖으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차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니 독상 트레이가 나온다.
백강정 내부

감촉도 좋은 나무 트레이에 고기와 채소 등 골고루 한 상이 차려져 있다.
다진 소고기를 구워 만든 뭉치 구이, 북어회 무침, 쇵치(꿩고기)장조림의 조리법을 가져온 닭고기 장조림을 비롯해서 고기와 채소를 오이에 넣어 찐 일과, 곶감 장아찌 등 시의전서의 복원뿐만 아니라 상주의 특산물을 이용한 요리로 한 가지 한 가지 모두 특별한 의미와 맛이 깃들어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이 밥상을 마주한다면, 낙동강변 자연의 색감과 사시사철 음식의 참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백강정 밥상과 뭉치구이


이곳에서는 별도로 비빔밥 정식도 주문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모든 이에게 가장 흔한 외식 메뉴 중의 하나가 비빔밥이지만, ‘부븸밥’으로 문헌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이 시의전서다. 맛난 한 상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그 뒤에는 열정을 바쳐 음식을 연구하고 구현하여 오늘의 밥상에 선사하는 백강정 노명희 대표가 있다. 타지에서 상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운명처럼 시의전서를 알게 된 것이 이제는 노대표의 소명 사업이 되어 버렸다. 시의전서 음식에 관한 석사논문도 집필하였으며 ‘시의전서 전통음식연구회’, ‘시의전서 식문화 포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곶감장아찌와 일과



노명희대표와 어머니

영영 세월의 뒤안길에 묻힐 뻔한 고서 한 권이 발견됨으로써 상주시의 식문화 관광에 대한 가치가 바뀌었고 한 사람의 인생까지 변화시켜 놓았다. 이것이 진정한 ‘음식 리메이크’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낙동강가에 가면 특별한 고객 경험을 만드는 백강정을 만날 수 있다.
백강정
경북 상주시 중동면 갱다불길 145
054-536-5500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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