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매거진R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맛의방주 지킴이 ‘산마을’

2021.11.22 | 조회 : 11,806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맛의방주 지킴이 ‘산마을’

 

 

충남 예산 한적한 시골에 있는 토종씨앗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두개의 종지에 삶은 통밀이 나왔다. 육안으로는 한 종지의 통밀이 좀 더 매끈한 듯 보였지만 미세한 차이를 금방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살며시 통밀을 몇 알씩 먹어보았다. 한국인들은 쌀은 말할 것도 없이 현미 흑미 보리 등 통곡물을 자주 접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며 음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의식하고 비교해 먹어보니 두 가지 통밀은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첫 번째 통밀은 좀 더 매끄럽고 익숙한 맛이었고 다른 한 개는 뒷맛의 구수함이 더 길게 느껴졌다.

 

알고보니 첫 번째는 수입 통밀이고 두 번째는 우리 종자 앉은뱅이통밀이었다. 우리 통밀은 특유의 고소한 맛과 더불어 씹는 질감도 보다 힘이 있었다. 실제로 밀을 오랫동안 농사짓고 있는 지역의 어르신들은 진즉 밥에 통밀을 섞어 잡곡밥처럼 먹어왔단다. 통밀 블라인드 테스트 후 우리 종자의 매력에 빠져 토종통밀을 리조또 등 동서양 여러 음식에 적용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땅의 토종 종자인 ‘앉은뱅이통밀’이 소멸해가거나 감소하고 있는 품종과 전통 음식문화를 발굴 보존하는 ‘맛의 방주(Art of Taste)’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울릉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없이 빠져들 것 같은 망망대해와 깃대봉에서 바라다보는 울릉의 멋진 산야는 꽤나 고된 뱃길 여정마저 감사를 보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항구 근처의 혼잡한 식당과 가성비 떨어지는 식단을 접했을 때 ‘역시 관광지구나’ 라고 실망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에서 이루어진 나리분지의 마을에 갔을 때 울릉의 참 속살을 만나게 되었다. 울릉읍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곡예 운전을 하고 한참을 가다 보면 등장하는 이곳은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 마을이다.  

 


성인봉과 깃대봉을 다녀온 등산객들이 많이 들르는 나리마을의 ‘산마을식당’은 20여년 된 지역의 베테랑 맛집이다. 울릉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한귀숙 대표는 어릴 적부터 먹어온 나물 중심 밥상을 차려내고 있었다. 엉개(엄나무순)나물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 미역취나물 더덕무침 명이나물지 독활(땅두릅) 삼나물무침 고비나물 등이 계절과 섬나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그러던 한 대표가 슬로푸드 가치에 눈을 뜨게 되면서 한 단계 더 뛰어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지역의 토종종자를 찾아내는 것만도 어려운데 그 자체의 채산성을 따지기에 앞서 보존을 위해 직접 재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의 메뉴로 만들어 울릉도 ‘맛의 방주’ 홍보대사를 자처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산채음식에 철학을 담은 ‘맛의방주’밥상이다. 

 

 

좀 더 쉬운 식재료의 비빔밥만 판매해도 될 것 같은데 여러 산채와 울릉도 해산물은 물론 붉그래한 고구마마냥 생긴 홍감자가 상에 오르고 엉겅퀴로 만든 국과 나물도 자주 등장한다. 거칠거칠한 질감의 울릉도돌김, 손꽁치, 칡소불고기, 섬말나리범벅 등 울릉도 맛의 방주 품목 중 최소 세 가지 이상이 계절변화에 따라 밥상에 오른다. 옛것을 잊지 않도록 지켜나가는 식탁의 수호자 마냥 주방에서는 언니가 홀에서는 딸도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며 가족의 혼연일체를 보여주고 있다. 한대표는 4년 전부터 울릉도 슬로푸드 회장을 역임하여 울릉도 ‘맛의방주’ 산물을 본인만이 아닌 지역 전체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울릉도 공항유치 소식이나 과도한 관광개발로 자연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매우 높다. 그래도 나리마을에 가면 사라질 것 같은 우리 산물에 대한 보존 열정이 물씬 느껴진다. 씨껍데기막걸리에 고기가 아니라 삼나물 한 점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한줄 답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