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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한탄강 지류의 참 매운탕
2021.10.11 | 조회 : 7,334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한탄강 지류의 참 매운탕

몇 년 전 철원군에서 주최한 군인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전국 최초 지리적 표시제로 유명해진 ‘철원 오대쌀’을 주제로 군부대 선발 군인들이 펼치는 대회다. 대회장인 철원종합운동장에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규모의 실물 탱크가 대회장 한 켠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백골레스토랑, 용호식당 등 군부대 특징에 걸맞은 팀명을 가지고 출전한 군인들의 요리는 포상휴가 등 달콤한 상품이 걸려 있어서인지 참신하고 기대이상으로 훌륭한 작품들이 꽤 있었다. 또한 요리 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대회의 치열한 응원전으로, 요리 대회장의 열기는 마치 웅장한 군인 올림픽을 방불케했다. 역시 철원은 호국의 도시임을 실감했다.
한국전쟁의 치열한 소모전의 현장이었던 철원은 백마고지 위령비, 북으로 상당 부분 복속된 김화군민의 망향탑, 노동당사 등 전쟁의 흔적물들이 현재의 유적지로 남아있다. 코로나시기 이전에는 북한 땅이 보인다는 15사단 전망대를 가기 위한 단체 안보관광이 상당했었는데,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자연그대로의 철원 진면목을 보기위한 개별 여행객이 주를 이룬다. 휴전(休戰)으로 멈춰진 공간 비무장지대(DMZ) 인근이다 보니 타 지역에 비해 개발 사업에 한계가 있어 자연적인 삶과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곳이나 다름없다.

한반도 내륙을 여행할 때 맑은 강만 보이면 근처 어느 집에선가 생선탕이 끓고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철원이 그런 곳 중에 하나다. 북한 평강군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의 상류인 화강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남대천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근처에서는 예부터 천렵이 성행했고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니 같은 계절 엇비슷한 생선이라도 손맛이 다른 매운탕이 되곤 하였다.
‘남대천황가네매운탕’은 상호에 모든 게 담겨있다. 이름처럼 남대천의 민물생선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잡고기등 고장의 산물을 주재료로한 황명욱씨 집안의 매운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젊은 시절 사업가로 도시에서 활동했던 주인장은 귀향한 후 외식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먹어온 집안 고유의 매운탕 맛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터다. 인천출신 아내는 천렵을 즐기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자연스럽게 시어머니 비법을 배우게 되었다. 천렵 후 한번 모이면 스무 명이 훨씬 넘는 집안 식구들 덕분에 지금의 매운탕 전문점의 연습을 오랫동안 한 셈이다.
토종대파 뿌리 말린 것에 다시마, 엄나무, 황기, 통계피, 북어대가리, 양파 등을 오래 달여 베보자기에 거른 밑국물로 매운탕을 끓였다. 보기에는 여느 식당의 탕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일단 국물 맛을 보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이것저것 과한 재료와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텁텁한 국물에 익숙한 손님들에게 처음엔 맛에 대한 불만의 항의도 들었다는데 점차 개운하며 깔끔한 황가네 국물 맛에 빠진 마니아 단골이 늘어갔다.

식당을 하면서도 꾸준히 농사도 짓기에 고춧가루, 파, 마늘 양념부터 그날그날 상에 오르는 채소들은 손수 재배한 것들이 많다. 봄에 피는 대파꽃으로 담근 장아찌, 냉이뿌리장아찌 등 수확할 때 나오는 잉여산물로 만든 별미 밑반찬도 간혹 맛볼 수 있다. 밥은 철원 대마리 쌀로 짓는다. 또한 서각에 조예가 깊은 주인장 덕에 식당 내부 여기저기에 물고기모양 메뉴판이나 도마, 그릇 등 다양한 목공예품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누군가와의 접촉이 성가신 코로나시국. 한탄강 고석정의 협곡을 보며 옛날 임꺽정의 신출귀몰을 상상하러 단출한 나들이를 떠나볼 만한 가을이다. 이때 철원 매운탕은 식후경으로 제격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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