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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_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선술집, 동락
2021.10.03 | 조회 : 3,319 | 댓글 : 0 | 추천 : 0
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선술집, 동락

음식에 관한 글을 쓸 때 스스로 검열을 하는 몇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MSG, 유전자조작 농산물, 채식 혹은 육식주의 등이 그것인데,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건강과 환경 나아가 이념 문제까지 맞물린 논쟁적 단어들이라 무척 조심스럽지요. 이는 우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글로벌한 주제여서 이를 다룬 책자들이 꽤 많이 나왔고, 심지어 ‘음식좌파, 음식우파’라는 책까지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에 못지않은 민감한 주제가 일본 음식입니다. 일식이나 일식당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 글은 큰 상관없지만 적극적으로 칭찬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유명 음식평론가는 한식 일부가 일본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가 네티즌들의 반발을 샀던 일도 있었죠. 이러한 방어적 본능은 대략 20년 전, 일제 자동차를 구입하자마자 바로 역사왜곡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와 동시에 제 차를 누군가가 못으로 긁고 간 쓰라린 기억 때문인데 일본 음식에 관한 글을 썼다가 또 무슨 횡액을 당할까 걱정이 앞서서입니다.
요즘 젊은 층들은 오마카세, 갓포, 이자카야, 구시아게, 시메사바... 같은 일본의 음식용어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류 드라마나 K-팝에 열광하고 우리는 일본 음식에 깊이 빠졌는데, 다른 분야의 갈등 때문에 서로 쉬쉬 한다면 이런 인지부조화도 없을 테지요.
송파에 가면 ‘동락’이라는 작은 일본식 선술집이 있습니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줄임말이겠거니 했는데 ‘노소동락’(老少同樂)이라는군요. 저 같은 흰머리 소년도 젊은 친구들 옆에 어울려 앉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곳은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요리사 혼자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놓으며 손님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며,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같은 손님도 말문을 열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입니다.

사진: 송파구 가락동 '동락'의 음식사진
요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분들이 요식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지요? 일본통 외교관 출신이셨던 분이 글도 쓰면서 우동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제 친구도 일본의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뒤 식당을 열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동락’의 주인도 지리학을 전공하신 대학교수님이셨는데 뜻하신 바가 있어 조기 은퇴를 하시고 작은 선술집을 열었다는군요.
동락의 음식은 호텔 출신 일식당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꾸밈새는 아니고, 일본 가정집에 초대받았을 때 볼 수 있는 정성 가득한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돼지고기된장절임’과 ‘오뎅삼총사’가 이곳의 대표메뉴이고, 닭튀김과 고등어초절임 수준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재료를 미리 준비를 많이 해놓으셨는지 음식을 금세 만들어 내시면서도 손님들의 질문에 해박한 지식으로 친절하게 답해주시지요. 손맛 가득한 음식은 기본인데다, 덤으로 지리학은 물론이고, 제가 관심이 많은 일본 근대사에 관한 궁금증까지 시원하게 설명해주시니 양주동 박사님 말마따나 박이정(博以精) 즉, 넓으면서도 깊은 지식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언제 또 식당을 접으시고 세 번째 길을 떠나실지 알 수 없으니 부지런히 다녀야겠네요.
여담입니다만, 이태원의 어느 선술집에서 식감과 향이 좋은 산마구이를 주문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겁니다. 생맥주 한잔 다 비울 즈음에 난데없는 꽁치구이가 나왔지 뭡니까? 아하! 꽁치가 일본말로 산마였군요. 한편으로는 이것이 두 나라의 현주소 같아 산마 맛처럼 쌉싸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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