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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순한 붉은 빛, 얼큰한 국물...양평서 만난 ‘엄마표 육개장’
2021.09.03 | 조회 : 16,711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순한 붉은 빛, 얼큰한 국물...양평서 만난 ‘엄마표 육개장’

살아오며 오래 먹어온 국으로 육개장이 손꼽힌다. 어릴 적 생일이 돌아오면 엄마는 생일상 아침 국에 대해 선택지를 주셨다. 세상 모든 국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질문 같지만 우리 육남매는 그 선택이 미역국과 육개장 둘 중 하나로 좁혀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만큼 가족 모두 엄마의 육개장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 집 육개장에는 특이하게도 소의 여러 내장과 부추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어릴 적엔 육개장 맛을 특별하게 해준 엄마의 비법이라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는 고기보다 내장이 저렴해서 넣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1924년도에 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국물요리 부분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육개장인데 여러 내장이 들어간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내장 듬뿍 육개장이 우리 집 만의 비법은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기억 속 내장 육개장의 국물 맛은 깊고 진했으며 요즘 식당 육개장처럼 기름이 떠있지 않고 어린 입맛에도 꽤 시원해 내 생일 국 1순위 선택지로 자리했었다.

대중식당 육개장은 기름이 많은 핏빛 색 국물로 고추기름을 헤치고 먹을 때가 있고 장례식장 육개장은 농도가 제각각이고 무국인지 고깃국인지 국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그러던 중에 양평 나들이 갔다 탁하지 않고 붉은 기름도 뜨지 않으며 집에서 끓인 것 같은 시원한 육개장을 만났다. 순한 붉은 빛의 얼큰한 국물이다. 테이블에 놓인 돌솥에서 아직 끓고 있는 대파와 버섯 고명만 봐서는 그저 평범해 보였다. 알고 보니 이 맛은 양수역 인근에서 3대를 걸쳐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수리에 우시장이 서던 옛날에 장세 받던 자리에서 직접 순대를 만들던 할머니와 간판도 없이 그저 역전식당으로 불리던 음식점에서 손맛을 자랑하던 어머니를 통한 집안의 내림이 있었는지, 이 육개장 집의 김승희 대표는 젊은 때 의류업을 했지만 이내 외식으로 전환하여 20년 넘는 경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6년 전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물려받아 본인 나름의 노하우를 보태어 깔끔한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샤브샤브와 육개장을 선보이게 되었다. 봄에 엄나무순, 두릅나무순 등을 따서 다듬어 보관했다가 밑반찬으로 내놓는 것은 어머니께 배운 요리의 흔적들이다. 그리고 느타리버섯은 양평의 지평면 수곡리에서 수매하여 듬뿍 사용하기에 버섯육개장이라 불린다.

식당 한켠에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양수역 앞 목로주점, 간판 없는 식당에 대해 쓴 정호영 시인의 시가 걸려있다.
“여객 손님보다 마을 사람 모이는 곳/
돼지 부속에 막걸리 한 잔/
토박이와 낯선이 어울려/
정을 부딪히는 곳”
이란 싯구가 있다.
이처럼 양평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적의 흐름이 끊이질 않은 곳이다. 조선시대 한양 선비들이 금강산을 가려면 양평을 거치면서 산수에 대해 시를 지었고 강원도의 진상품은 한양으로 가기 위해 양평에서 쉬어가야만 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까운 물 맑고 아름다운 곳이기에 자전거나 자가용으로 몰려드는 양평이다. 예나 지금이나 토박이와 낯선이의 만남은 계속된다.
어머니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두물머리 양수역 인근에서 ‘두물머리연꽃마을’이란 연의나라 양수리에 걸맞는 상호를 걸고 딸이 그 맛과 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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