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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도심 한복판에서 즐기는 자연음식 ‘채근담’
2021.07.26 | 조회 : 2,324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도심 한복판에서 즐기는 자연음식 ‘채근담’

사찰음식을 테마로 음식문화탐사를 일년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말린 가죽나무 줄기로 채수(菜水)를 내어 승소(국수)를 끓이는 것을 배우고 봄철 짧게 초록을 띠는 제피(조피)의 순간을 포착하여 열매를 따고 껍질을 가루로 내는 비법도 귀동냥하였다.
보리등겨 메주에 고춧가루, 조청, 무, 마른고춧잎을 넣어 담근 등겨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때가 그리 행복할 수 없다는 스님도 만났다.
사찰음식의 깊이와 지혜를 알면 알수록 감탄하면서도 정작 음식 분야에 줄곧 종사한 내 자신은 사찰음식이 외식의 메인 장르에 도달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육류, 어류가 빠진 채 상을 차려야 되니 만드는 이도 어렵고 먹는 사람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사찰음식의 외식화는 참 어렵구나라고 생각해왔다.

일찍이 사찰 한정식을 선보인 ‘채근담’을 2002년에 오픈 당시부터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몸 건강엔 좋을지는 몰라도 사찰음식으로 큰 규모의 식당 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우려도 가지며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20년을 바라보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오픈 초기엔 사찰음식의 원형을 유지하여 오신채(五辛菜) 사용도 자제한 음식을 선보이다 점점 채근담을 드나드는 고객과의 소통 속에서 창의성과 대중성이 보태지며 현재의 자연주의 철학이 담긴 채근담 한식 고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없는 걸 내세워 막연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그런 식당은 아니다. 편안하면서도 채식에 색다른 센스가 돋보이고 대접받는 고급스러움이 있기에 귀한 분을 모시고 가서 음식의 스토리를 펼치기에 손색이 없다.

쉽지 않은 소재인 채식을 기본으로 식당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김미숙대표에게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김대표는 사업하는 남편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7년을 살면서 상사(商社)와 관련된 분들의 만찬을 손수 기획하고 준비하며 자연스레 한식의 가치와 깊은 맛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거기다 그녀의 음식 열정에 더욱 불붙인 막역한 인생 친구가 있었다. 바로 서울에서 큰 한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며 사찰음식에도 큰 뜻을 두고 채근담까지 오픈한 올케언니였다. 안타깝게도 채근담을 오픈하고 오래지 않아 올케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때부터 김대표는 인생의 의지이며 음식의 끈으로 이어온 동반자나 다름없는 언니의 열정이 담긴 채근담을 지키게 되었다. 그때부터 채근담의 음식 여기저기에 국내외 많은 음식 공부로 다져진 내공과 오랜 해외 경험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젓갈을 일체 넣지 않고 담근 보쌈김치는 정갈하면서도 시원하고, 다시마, 무, 엄나무순, 당귀 등의 채수로 끓인 들깨탕은 기분 좋은 쌉쌀함의 여운이 늘 한결같다. 이런 변함없는 전통식 이외에 창작 음식도 만들어 상차림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지리산에서 올라온 시금초(야생초의 일종)가 올라간 토마토 코울슬로나 오이로 감싼 열대과일모둠 등은 이름만 들어서는 한정식과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우아한 한정식에 모던한 터치를 더하며 상차림을 조화롭게 완성시킨다. 또한 취향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온전한 채식코스는 물론 육류가 일부 포함된 자연음식코스를 갖추어 누구나 만족스러운 한 끼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전국의 사찰을 돌며 음식 하는 스님들을 만나면 마치 식재료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마디로 말하면 ‘절밥은 이상하게 맛있다.’
자연의 언어를 음식으로 경험하는 이 즐거운 만족감을 도심 한복판 테헤란로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그저 다행일 뿐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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