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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_무릎도가니를 통째로 넣고 정성껏 끓여낸 보양식
2021.07.19 | 조회 : 2,281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무릎도가니를 통째로 넣고 정성껏 끓여낸 보양식

국물은 참 뽀얗고 구수하고 진했다. 소의 사골과 우족, 도가니 부위를 넣고 12시간 이상 가마솥에서 끓였기 때문이다. 건더기가 참 녹진하고 부드럽다. 이제 틀니를 하시는 어머님이 한 그릇 드시고는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다고 하실 정도로. 경기도 화성의 원천설렁탕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맛집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밥집, 인근 대기업의 맛집으로 오랜 시간 자리매김한 식당이다. 특히 소무릎도가니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무릎도가니탕이 인기다.
도가니란 소의 무릎 뼈 주위에 붙어있는 살점과 연골을 통틀어 이야기 한다. 도가니살은 비계가 없고 근섬유가 많아 구워 먹기에는 식감이 질기지만 푹 삶으면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여기에 뼈 주위 연골 부위는 투명한 아교 단백질로 구성되어 오랜 시간 익혀내면 젤리처럼 쫀득거리며 찰진 맛이 일품이다. 흔히 다른 식당에서 도가니탕을 주문하면 스지 부위만 나오는데 스지는 엄연히 도가니와 다르다. 스지는 소의 사태살에 붙어 있는 힘줄과 주위의 근육이며 ‘筋(힘줄 근)’ 자의 일본식 발음이다. 약간 불투명하고 쫀득쫀득한 콜라겐 덩어리로 도가니와 비슷한 맛을 내기에 식당에서는 구하기 힘든 도가니 대신 스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원천설렁탕의 음식 맛은 좋은 재료를 확보하고 푸짐하게 넣는 것이 비결이다. 무릎도가니는 소 한 마리당 네 개 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이다. 이곳의 도가니탕 1인분에는 통무릎도가니 절반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스지 부위도 조금 들어가 있어서 씹는 맛이 다양하다. 무릎도가니가 150그램, 스지 부위가 80그램 총 건더기 중량이 230그램이니 한 그릇을 먹어도 든든하다. 화학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고 주재료를 듬뿍 넣는 것이 맛의 포인트. 국물은 정갈한 구수함이 매력적이다.
단지 곁들이는 것이라곤 소량의 생강과 인삼 뿐이다. 생강은 끓일 때 넣어 느끼함과 잡내를 잡고 인삼은 손님상에 올릴 때 살짝 가미하여 향을 입힌다. 소금간이 되어있지 않아 훌훌 마시다 보면 어머님 품에 안겨 모유를 먹는 기분이 든다. 국물이 차가우면 묵처럼 탱글탱글 하게 변하는데 이는 도가니와 우족에서 나온 콜라겐 성분 때문이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국산 재료로 직접 담는 정성을 보인다.

전국의 탕반 맛집이나 노포를 다녀보면 좋은 재료를 쓰고 정직하게 하는 식당일수록 국물 맛이 평온하다. 처음에는 그 맛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이 또한 학습 효과라 할까, 재료와 요리사에 대한 신뢰감이 작용하여 만족감은 더해졌다. 도화지 같은 국물에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여 약간의 소금과 후추, 파채를 가미하는 과정이 좋았다. 깍두기 국물을 한두 번 떠 넣거나 깍두기를 통째로 투하하여 국물이 선홍빛으로 변해가는 것도 재미있다.
푹 고아진 무릎도가니탕을 먹으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지금 보다 한여름 더위를 힘들어할 것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릎이 시리며 치아가 약해져 씹어 삼키는 쾌감이 지금보다 덜할 것이다. 그 때도 이 식당 한 켠에 앉아 따끈하고 편안한 국물을 마신 후 입에서 살살 녹는 도가니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장님 부부가 음식에 대해서 진정성이 있고 젊고 열정이 있어서 다행이다.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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