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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_전복에 관한 소소한 기억들
2021.07.19 | 조회 : 2,181 | 댓글 : 0 | 추천 : 0
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
전복에 관한 소소한 기억들

오래 전, 귀하디귀한 자연산 전복에 홀려 저지른 죄를 이제야 고백합니다.
한때 골프에 빠져 겨울만 되면 제주도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다닌 적이 있습니다. 남자들끼리만의 여행이었기에 마음 한구석,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겠지요. 실컷 놀고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수협공판장에 들러 수산물을 잔뜩 사가는 것은 일종의 자기 보속이었습니다.
팔뚝만한 제주 은갈치 한 박스는 필수였고, 고등어나 옥돔을 사기도 했지만 저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전복을 사곤 했습니다. 자연산 전복 채취를 시기적으로 금하였는지 아니면 외지로의 반출을 금지하였는지 당시 상황에 대해선 요령부득이지만, 수산물가게 주인은 가방 밑바닥에 잘 포장해서 가면 괜찮다며 오분자기 몇 미까지 서비스로 넣어주셨지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목화씨를 중국에서 들여온 문익점의 심정처럼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예전엔 귀하고 콧대 높았던 수산물 중에 양식에 성공하면서 대량 출하되고 가격까지 내려가니 오만한 귀족에서 평민으로 강등당한 느낌이고, 심하게는 쌤통이라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수산물 중에 광어나 제주 다금바리(자바리) 등도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전복입니다.
서자 취급 받던 오분자기는 오히려 귀해지고 전복은 이제 라면에도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당쇠와 주인이 자리바꿈을 한 격이지요. 하지만 양식산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사이즈가 큰 자연산이라면 대접이 달라집니다. 대개 양식은 사료나 먹이값이 사이즈를 정해주는데 일정 크기가 되면 출하를 해야만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입니다. 다시마나 미역을 먹이로 하는 양식 전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전복은 양식이라 하더라도 자연산과 비교하여 영양학적으로 별 차이가 없으며 맛도 구별하기 힘듭니다.

중국의 소동파는 전복을 찬미한 복어행(鰒魚行)이라는 글에서 ‘거친 술과 함께 기름을 약간 넣으면 그 맛이 오래 간다’고 했으며 특히 발해만에서 나는 전복을 최고라 하였습니다. 17세기 조선의 문인 이응희가 쓴 연작시 ‘만물편’에서도 ‘어패류가 수만 종류지만 으뜸은 우리 동방의 전복’이라 하였습니다. 정약전 역시 ‘자산어보’에 ‘맛이 달아서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말려서 포를 만들어 먹는 것’이라 하였지요.
전복을 즐기는 걸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따라올 나라는 없지만, 세 나라의 먹는 방법은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와 일본은 생으로도 먹지만, 중국은 날로 먹지 않습니다. 중국은 주로 전복을 말려두었다가 불려서 요리를 하고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말렸다가 쓰는 요리가 없다고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전복으로 젓갈을 담가 먹지만 중국은 전복젓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전복 내장(게우)까지도 몸에 좋다며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우리가 전복을 가장 다양하게 즐기는 민족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나 치과의사 입장에서 딱딱한 생전복을 권하려니 살짝 망설이게 됩니다. 생전복의 달콤한 맛을 즐기려다 멀쩡했던 치아가 횡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룡포는 포항에 속한 항구도시로 사람들의 기억에는 주로 해병대, 과메기, 대게, 모리국수, 일본 적산가옥, 장기곶 일출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복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데, 제주에 이어 경북이 해녀 수가 두 번째이고 그중 포항 해녀가 경북에서 제일 많다는 사실에서 일면 수긍이 갑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맛본 ‘전복도강죽’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전복죽을 내는 식당이 구룡포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물회의 개념을 뒤집는 전복물회를 주문하면, 전복죽은 물론이고 회무침과 각종 반찬들이 식탁을 가득 채웁니다. 비록 혼자지만 지역 소주 반병 정도의 반주는 전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봐야지요.
사진은 포항시 '구룡포전복도매집'의 전복물회 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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