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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_돼지국밥엔 ‘정구지’를 넣어야 제 맛

2021.06.07 | 조회 : 4,545 | 댓글 : 0 | 추천 : 0

 

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

돼지국밥엔 ‘정구지’를 넣어야 제 맛

 

 

제주도에 갈 때마다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토음식으로 몇 끼니를 해결합니다. 각재기국(전갱이국), 옥돔국 그리고 갈치국도 많이 찾는 메뉴 중에 하나인데, 너무나 비릴 것 같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시나브로 생선국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생선비린내를 잡아내는 노하우가 분명 있겠지만, 재료의 신선도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겠지요. 부산에서도 제 상식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돼지국밥입니다. ‘세상에나 돼지고기로 국을 끓이다니!’하며, 돼지고기 누린내를 어찌 감내하는지 사회초년병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순댓국도 굳이 찾아 먹지 않을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맛들인 후에는 속칭 ‘금사빠’가 되어 이제는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는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어느 유명 요리사 겸 작가도 이에 천착하더니 아예 돼지국밥집을 직접 차렸다고도 하는군요.)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돼지는 소와 닭에 비하여 인기가 없던 가축이었습니다. 일단 잡식성이어서 사람들과 먹이 경쟁을 해야 했고, 토종돼지의 크기가 워낙 작아 사육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치며 돼지 사육이 늘어났고, 돼지고기를 즐겼던 이북 사람들이 전쟁 때 피난 내려와 영남지역에 돼지국밥 문화를 널리 퍼뜨렸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평양냉면이 피난 때 부산에 내려오면서 밀면으로 분화한 것과도 일면 상통하지요.

 

 

돼지국밥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부산식과 밀양식으로 크게 나뉩니다. 육수를 뼈로 내느냐, 살코기로 내느냐로 구분하기도 하고, 국물은 소뼈로 우려내고 고기는 돼지를 쓰기로 하지요. 사용하는 고기 부위도 식당마다 다르며, 부추를 넣느냐 혹은 파를 썰어 올리느냐에 따라 나누기도 하는데 굳이 지역적으로 구별할 까닭은 없습니다. 무교탕반을 흉내 내어 서울식 곰탕처럼 내놓는 식당까지 있으니까요. 다만 경상도에서 돼지국밥을 먹을 땐 부추라는 표준어보다는 ‘정구지’라는 사투리를 써야 말맛에 더하여 밥맛까지 좋아집니다. 정구지란 말은 영화 ‘변호인’에도 등장합니다. 주인공 송강호가 ‘돼지국밥에 정구지를 많이 넣어야 맛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부산사람들은 환호를 했을 겁니다.

 

부산의 유명 돼지국밥집들에 가보면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국밥은 대체로 어른들의 음식이지만, 부산지역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며 가족 단위도 많고, 심지어 할머니가 아기를 등에 업고 와서 국밥을 떠먹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서 아빠 사자가 주인공 심바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살아나오게 하며 어른 사자로 키우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돼지국밥을 먹는 훈련을 통해 부산 기질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고 보니 ‘부산사람들 혈관에는 돼지국밥 육수가 흐른다’는 세간의 말이 결코 허튼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해장이 필요할 때 돼지국밥 먹으러 KTX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십여 년 전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토박이 밀양돼지국밥’을 찾습니다. 수원신갈 IC 주변에 본점이 있지만, 점차 방바닥에 앉는 식탁이 불편하여 요즘은 분당 태재고개 넘어 오포의 직영점으로 갑니다. 덤으로 내주는 정구지도 넉넉하며, 찬으로 나오는 섞박지와 김치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마에 송송 맺히는 땀방울엔 분명 어제의 알코올 성분이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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