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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_제주의 꿩메밀칼국수 구수하고 달큰한 메밀 음식의 정수
2021.05.17 | 조회 : 7,829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제주의 꿩메밀칼국수 구수하고 달큰한 메밀 음식의 정수

여행을 떠나면 습관적으로 먹던 것을 떠나 새로운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게 된다.
메밀이 생각날 때면 평양냉면이나 막국수를 먹곤 하였지만 메밀 산지인 제주에는 정작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꿩메밀칼국수가 있으니 꼭 한번 맛볼 만 하다.
제주동문시장을 50년간 지키는 노포 골목식당.
이름처럼 한적한 골목에 자리하여 아는 사람만 가게 되는 식당이다.
제주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음식 꿩메밀칼국수를 하는데 나이가 지긋한 할머님이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며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따스한 칼국수를 끓여 주신다.
메밀 하면 강원도 봉평을 떠올리지만 정작 최대 메밀 산지는 제주도이다.
매년 5~6월이나 9~10월이면 하얀 메밀꽃의 장관이 펼쳐지는데 제주의 연간 생산량은 전국 30%를 웃돈다. 메밀은 제주의 신화에도 등장하여 농경의 신인 자청비 여신이 하늘에서 지니고 와서 제주에 심은 다섯 곡식 중 하나이다.

꿩메밀칼국수는 제주의 향토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이다. 닭이 귀해서 산 자락에서 잡은 꿩으로 육수를 낸다.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가 불가능하니 쌀이 귀했고, 보리, 수수, 조 마저 바닥이 보일 무렵 산자락에서 수확한 메밀로 음식을 해 먹었다.
국수는 물론 떡이나 수제비에도 메밀이 들어갔다. 메밀을 먹으면 속이 아릴 수 있어 반드시 무를 곁들이는 것은 제주 사람들이 오랜 시간 터득한 지혜이다.
골목식당은 메뉴판이 단촐하다. 낮에는 꿩메밀칼국수를 하고 밤에는 꿩구이를 한다.
50년 이 식당을 지킨 국수의 레시피는 변함이 없다. 꿩의 살을 발라내어 무와 함께 육수를 내고 메밀 100% 반죽을 손으로 직접 처대어 가닥가닥 썰어낸다.
푹 고아진 육수에 메밀면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내면 국물은 스프처럼 걸죽해진다. 주인장은 한사람이 오든 열 사람이 오든 먼저 해둔 음식을 내놓는 법이 없다. 주문하면 정성을 다해 끓여주기에 국수 한 사발을 받으면 뽀얀 김이 모락모락 얼굴을 덮는다.
면을 먹기 전에 주재료가 풍부하게 우러나온 국물을 떠 먹는다. 속 깊숙한 곳까지 따스해지는 느낌이 참으로 포근하다. 평양냉면이나 막국수에서 느끼는 메밀의 묘미는 면에 집중되는 반면 이 메밀칼국수는 방점이 국물에 있다.
꿩으로 낸 육수는 은은한 향에 탄탄한 감칠맛을 깔아주니 닭이나 소고기 육수보다 품위가 있었고, 메밀면 사이로 간간이 씹히는 꿩고기는 담백하고 쫄깃하여 먹는 재미를 더한다.

메밀만 넣고 면발을 뽑는 것은 이곳 사장님 만의 비법이다. 투박하게 생긴 면이 치간에서 지긋이 씹히는데 메밀의 구수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메밀만 있으면 뻑뻑할 테지만 면처럼 가늘게 채친 무가 사이사이에서 부드러운 완충제 역할을 한다. 고명으로는 김과 애호박만 심플하게 들어간다.
메밀 칼국수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쓴다. 면의 허리를 툭툭 끊어놓고 무와 국물을 듬뿍 실어 한입에 넣으면 포근한 수제비를 먹는 것처럼 편안하다.
식당은 소담하니 테이블이 4개 정도이며 손님과 사장님은 금새 친구가 된다. 사장님의 걸쭉한 제주도 사투리를 들으며 국수를 먹다 보면 제주의 심장에 대고 숨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제주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밑반찬을 해 주는데 김치나 나물 무침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다.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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