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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_그 많던 명태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21.04.26 | 조회 : 2,139 | 댓글 : 0 | 추천 : 0
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
그 많던 명태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대학을 입학하던 1981년에는 16만 톤이나 잡혔다는데, 지금은 킬로그램 단위로도 잡히지 않고 또 잡아서도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청어는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대구는 꾸준한 치어방류 사업으로 옛 명성을 찾아가지만, 명태는 해수온도 상승이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명태새끼인 노가리 대신 대구새끼도 기꺼이 받아들인 주당들의 희생이 과연 빛을 볼 수는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함경도 ‘명천 고을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 때문에 명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은 익히 알지만, 그 작명을 한 관찰사의 불길한 예언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은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관찰사의 말을 옮겼는데, ‘이 생선은 우리나라 300년의 보물’이라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300년 뒤에는 이 생선이 귀해질 것’이라 말했다는군요.
대략 계산해보면 해방 전후까지가 기한이었지만 50년 정도 더 갔기에 허언이려니 했는데, 이는 노래방 서비스 타임 같았을 뿐, 결국 ‘민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이 생선만큼 서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도 없어서, 고등어가 국민생선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당연히 명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가미부터 내장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을 뿐더러, 저렴한 가격 때문에 조선중기 이후부터 근자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지요. 그런 까닭에 명태를 이르는 별칭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새우를 잡아 젓갈을 담그는 시기 등에 따라 새우젓 명칭이 다양하다지만, 명태에 견주면 조족지혈입니다. 잡는 방법, 말리는 정도, 잡힌 곳, 크기 등에 따라 명태, 동태, 생태, 금태. 낚시태, 그물태, 기계태, 노가리, 왜태, 지방태, 원양태, 북어, 황태, 코다리, 은어바지, 동지바지, 춘태, 하태... 들어본 이름만 물경 스무 가지가 넘고,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60가지나 된답니다. 만약 동해에 명태 씨가 마르지 않았다면 지금도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지고 있을 테지요.

명태는 잡힌 지 2~3일만 지나면 상하기 시작하기에 신선하고 살이 포실포실한 국내산 생태는 이제 추억의 맛이 되었습니다. 명태를 산 채로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각오해야지요.
실제 명태를 잡아 사이사이에 얼음을 넣어 냉장한 상태로 가져와 생태로 팔고 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일본 북해도 인근에서 잡힌 것들입니다. 하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생태찌개를 시켰는데 살짝 쉰 맛을 느낄 때가 꽤 있었습니다. 선도가 예측 불허인 생태를 먹느니 차라리 가성비가 뛰어나고 일정한 맛을 내는 동태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해동 잘한 동태의 살맛은 생태 못지않을 뿐더러 알과 곤이 같은 지원군 역할도 대단하니까요.
사라져가는 명태 때문에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얼마 전 보궐선거에 느닷없이 생태가 소환되었습니다. 심지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터져, 머나먼 북태평양 명태의 운명까지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2년 후 방류라지만, 생태찌개 메뉴를 아예 포기하려는 식당도 생기고 있습니다. 지인인 원자력 전문가에게 전화까지 걸어 문의하니 큰 걱정은 말라지만, 아예 명태 수입 자체가 끊길까 두렵네요. 이런저런 명태 걱정에 오늘은 언론인이셨던 고 홍승면 선생이 추천한 북어두주(北魚頭酒)나 만들어 마셔야겠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히레사케와 비슷하지만, 북어대가리가 복어 꼬리나 지느러미를 대신하지요. 곰곰 생각하니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처럼 집이나 식당 입구에 매달아두던 북어도 잘 보이질 않네요. 광목천에 묶어 다시 걸어두면 혹 명태가 돌아올까요?

사진은 수원 장안구 연무동 '동태찌개유명한집'의 동태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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