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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_제주의 40년 자연과 삶이 깃든 수수팥떡

2021.03.22 | 조회 : 2,111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제주의 40년 자연과 삶이 깃든 수수팥떡 

 

아무 조건없이 아무 때나 찾아가도 무르팍을 내어주며 복슬강아지처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시골집 할머니, 나는 아직도 할머니 방의 담요의 냄세, 구식 텔레비전, 처마 밑에 걸려있는 흑백 가족사진 들을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 중 가장 뚜렷한 기억은 부엌에서 내어 주시던 수수팥떡의 맛이었다.

 

할머니 손맛은 음식에 기록되었다. 그 음식을 다 먹어치우면 사라지는가 했더니 추억이라는 저장소에 깊이 남아있었다. 손맛은 텍스트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추억을 통해 전달된다. 기억하는 사람들 조차 사라져버리면 손맛, 향기, 추억 이 모두가 홀씨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나는 오늘 저녁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추억하며 부엌 찬장에서 수수팥떡을 하나 꺼내 물었다. 

 


제주도에는 40년 역사를 이어오는 떡집이 있다.

 

<라이스나이스>. 언뜻 보면 요즘에야 개업한 트랜디한 떡카페 같지만 주인장의 사연에는 고스란히 전통이 살아있다. 떡집의 모태가 된 것은 고향 할머니 할아버지가 문을 연 떡방앗간이기 때문이다. 1982년 제주도 세화리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화제분소>라는 방앗간을 개업하셨다.

 

정미소로 시작하여 기름 착유, 떡 제조업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방앗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회전솥을 직접 개발하여 보리도 볶고 콩도 볶아 내셨다.

보리개역(제주 전통식 미숫가루)는 제주산 보리를 찌고 말리고, 제주콩은 회전 솥에 볶아내어 꼬숩은 맛이 그만이다. 찬물에 넣어도 잘 녹아서 시원하게 마시기에도 좋고 쌀이 귀한 제주 사람들의 한끼 식사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제는 손녀가 옆으로 와서 오손도손 떡을 함께 빚으며 라이스나이스 라는 떡집 간판을 방앗간 옆에 걸게 되었다. 여전히 할머님은 팥은 삶으시고 밑 재료 준비를 해 주시며 손녀는 이를 받아 예쁘고 정갈하게 떡을 빚는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할머니는 제사나 명절에 쓰이는 맞춤떡 위주로 했지만 지금은 소포장 떡을 준비하여 언제 어디서 찾아오는 손님들께 떡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수팥떡은 할머님이 팥을 삶으시기에 옛 팥맛이 그대로 났다. 촉촉하게 삶은 팥은 설탕 맛이 아니라 팥 고유의 달콤 쌉싸름함이 그만이다. 그 안의 수수떡은 수수와 찹쌀을 섞어 쌉싸름한 고소함에 부드러운 쫄깃함을 더했다.

 

팥을 수북하게 넣어주니 입안에 가득히 씹힌다. 팥가루를 묻히는 경단 스타일이 아니라 통팥을 삶아 수북하게 뒤덮는 오메기떡 스타일의 수수팥떡이다. 또 하나 명물은 방앗간에서 만든 제주보리개역이다. 100% 제주산 보리와 제주산 콩을 사용해 옛날 방식을 고수하여 만든다.

 

제주 보리 80%에 제주콩 20%의 배합이 황금비율이다. 보리가 더 많으면 뻑뻑해 지고 콩이 너무 많아도 개운함이 덜하다. 제주쑥인절미도 맛있다. 해풍 맞은 제주 쑥은 향긋하기 그지없는데 방앗간에서 직접 제분한 찹쌀을 만나 제대로 꽃핀다. 거기에 직접 볶은 콩가루를 얹어 주니 한입만 먹어도 코끝마저 향기롭다 제주쑥인절미는 국내산 찹쌀과 구좌리에서 직접 캔 쑥 1:1 비율로 배합되어 만들어 진다. 


삶의 향기와 추억이 녹아든 떡이었다. 할머님이 허리가 아프셔서 일손을 돕기 위해 곁으로 찾아온 손녀의 마음도 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떡집 방문도 좋고 전국 택배도 가능하다.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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