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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제주 창고다이닝 “해녀의부엌”
2021.03.08 | 조회 : 2,100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제주 창고다이닝 “해녀의부엌”

음식을 즐기는 곳이 아닌 음식을 ‘만드는’ 공간에서 여러번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평소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본분에 충실한 회색빛 스텐으로 둘러싸인 무미건조한 주방 작업장이었지만 파티가 열릴 때 만큼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다이닝으로 변신하곤 했다.
셰프가 즉석으로 직화 스테이크를 구워내고 산지 직송 석화찜 등 별미 음식을 만들 때의 현장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안에서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마술쇼가 열리기도 했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주방에서 이루어진 스탠딩 파티다보니 불편함도 있었지만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경험들로 그곳을 가득 채우자 오히려 파티에 한번이라도 참석한 사람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갔다. 우리는 이 파티를 '창고다이닝'이라고 불렀다.

얼마 전 제주에 갔다가 특별한 창고 파티를 경험했다. 제주 동쪽 끝에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곳이다. 공연을 보고 식사를 하는 극장식다이닝인데, 이곳은 원래 종달어촌계가 창고로 사용했던 장소였기에 처음가면 식당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관이다.
열 살 때부터 우영밭(텃밭)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내고 퐁당퐁당 물질 연습을 해온 권영희 할머니는 현재 89세임에도 현역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식사 전 공연에서는 20대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키운 권할머니의 해녀인생을 그린 단막극이 펼쳐지는데, 엔딩씬에 그녀는 고객 테이블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무대 위의 본인 역을 한 젊은 권영희에게 말을 건네며 막이 내린다.

공연 후 권할머니를 비롯한 해녀 분들이 따온 해산물과 해초로 구성된 식사가 펼쳐진다. 어촌계 시골밥상이 아닐까 상상했는데, 나오는 음식의 손질과 테크닉이 꽤 수준급이고 세련된 담음새다.
육지의 소라와 다르게 제주 현무암에 박혀있다 보니 뿔이 많이 생긴 뿔소라가 특히 인상적이다.
뿔소라를 수조에 담가두면 뿔이 점점 없어져 육지의 소라처럼 된다고 하니, 강인하게 거센 자연에 맞서 견뎌온 세월의 증거를 제 몸에 두른 소라는 제주 바다에서 생존하는 해녀의 강건함과 비유되곤 한다.
즉석에서 짠 감귤주스, 우뭇가사리, 뿔소라와사비장이 식전 입맛을 돋우고 뿔소라와 적해삼, 고장초(해초)가 전채 요리로 등장한다.
거기다 뿔소라 꼬치구이, 뿔소라미역국도 맛보게 된다. 바다생물 군소는 해초를 뜯는 모습이 뭍의 검은 소가 풀을 뜯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군소라 불렸다 하는데 군소무침은 고급 능이버섯 식감을 연상케 한다.

식사의 감동이 끝날 무렵, 권할머니가 나오셔서 당신의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는 얇은 무명천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해야했는데 삼십분 남짓 물질한 뒤엔 1-2시간 몸을 녹여야 체온이 돌아왔단다. 요즘 같은 고무해녀복은 불과 40여 년 전부터 입기 시작했다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해녀의부엌 상차림의 음식 하나하나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바다가 해녀들의 부엌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녀의 부엌을 만든 김하원씨도 만났다. 해녀 집안에서 성장한 제주 출신으로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젊은 대표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공연과 접목한 음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
최근 코로나로 인해 외식의 형태가 모바일 배달로 재편성되어 가면서 외식 종사자들은 본인의 음식이 배달 형태로 바뀌지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이러다 특정 공간에서 즐기는 음식의 감동이 가볍게 치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이런 시기에 제주에서 만난 창고다이닝은 공간의 매력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니 더 말할 나위 없이 소중할 뿐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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