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

11월은 도루묵 알이 꽉 들어차는 달

 

 

11월 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니 도루묵 생각이 간절합니다.

인디언 부족들은 11월을 이를 때 ‘기러기 날아가는 달’, ‘샛강 가장자리가 어는 날’,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등과 같은 여러 표현을 쓰는데, 모호크 족은 ’많이 가난해지는 달‘이라 부른다는군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때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도루묵 알이 꽉 들어차는 달‘이라 한다면 조금은 넉넉해지고 푸근해지지는 않을까요? 그야말로 11월은 도루묵이 ’살 반, 알 반‘인 달이기 때문입니다.

 

도루묵은 크기도 작지만 볼품도 없고 그 흔한 비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두어 달 정도만 반짝 인기를 얻다가 12월 강추위가 몰려오면서 찾는 사람이 잦아듭니다.

 

도루묵은 슬픈 스토리를 가진 이름인데, 그 내용은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왕이 동해 쪽으로 몽진을 갔다가 먹을 것이 궁한 상태에서 이 생선을 맛있게 먹고는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누군가가 대답하길 '묵(목)'이라고 했다는데, 왕은 생선의 껍질이 은색이므로 "앞으로 은어(銀魚)라 불러라!"하며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환궁한 뒤에 그 맛이 그리워 진상을 시켰으나, 왕궁까지의 머나먼 길도 그러하고, 왕 역시 피난길의 허기진 배가 아닌지라 제 맛을 느끼지 못하였을 겁니다.

실망한 왕은 이 맛없는 생선 이름을 ‘은어’에서 도로 '묵'이라 명을 해서 사람들은 '도로묵'이라 불렀고 약간의 음 변화를 거친 뒤에 '도루묵'이 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셜록 홈즈 같은 ‘뇌피셜’로 추리를 해보면, 왕이 피난을 가서 먹었을 때가 도루묵 제철인 초겨울이었고, 환궁하여 다시 먹었을 때는 늦봄이나 여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도루묵 팔자를 쥐락펴락했던 왕은 선조라는 설이 우세한데 선조는 의주 쪽으로 피난을 갔지 결코 동해안은 아닙니다. 만약 그 시대가 맞는다면 함경도와 강원도 방향으로 피난을 간 선조의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포악과 변덕으로 유명한 양반들이지요.

 

도루묵 제철에 제법 큰 놈을 구워 먹다 보면, 배 밖으로 탈출한 알들은 잘 익은 석류가 터진 모양새이고 ‘낫또’처럼 끈적한 점액질 범벅이라 묘한 맛을 냅니다.

하나하나 씹히는 알의 식감 역시 매우 독특합니다. 도루묵 요리로는 찜, 찌개 등도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저는 구이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일단, 미디엄 웰던(medium well-done) 수준으로 구운 뒤 알을 먼저 먹고는 꼬리와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남김없이 씹어 먹기도 하고, 머리와 뼈만 입으로 싹 발라내는 놀라운 기술을 구사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철 알배기 도루묵을 내는 식당에선 제철임에도 냉동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살이 퍽퍽하고 알도 박제된 것처럼 딱딱하며 점액질 역시 말라있음을 봅니다.

 

 

양재동에 위치한 ‘어진’에서는 요즘 ‘멀쩡 도루묵’을 맛볼 수 있는데, 동해안 별미인 명태 서거리깍두기는 덤입니다. 도루묵 제철에 머나먼 동해안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작은 위로가 아닐 수 없지요.

 

 

올해는 전 세계에 역병이 창궐하고 시국마저도 어수선한데, 사람들은 오로지 권력과 부귀영화를 쫓고, 서로 편을 갈라 악다구니로 싸웁니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미천한 생선이 알려주는 세상의 진리, 그래봤자 산다는 것 자체가 ‘말짱 도루묵’임을 왜 잊고 사는 걸까요?

 

 

 

어진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18길 15-11

0507-1408-2933

도루묵구이 30,000원 도루묵찜(중) 3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