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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초록바구니
2020.04.06 | 조회 : 2,427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초록바구니

단순한 음식여행을 넘어 좀 더 구체적인 음식 테마를 만들어 한국의 향토음식을 찾아 떠나는 음식문화탐사 프로그램을 장기간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주제가 ‘컬러 푸드’였다. ‘컬러’하니 머리에서 가장 먼저 빨강, 노랑 현란한 색채의 파프리카가 떠올랐다. 하지만 향토 음식에 과연 컬러 푸드라고 상징할 만한 게 있었나 동시에 막막해졌다.
그러다 찾아 떠난 음식이 오랜 역사를 가진 종갓집 간장이었다. 햇간장 ‘청장’부터 5년 된 ‘진장’ 그리고 10년 이상 된 ‘수장’까지 오래된 순서로 간장을 담아 줄을 세워서 보니 이름은 물론 맛과 본연의 컬러가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그날은 지금까지도 익숙했던 일상의 재발견이자 가장 인상 깊은 컬러 푸드 비교경험기로 기억된다.
누구나 아는 식재료를 세심히 연구하고 그 컬러와 생리를 재발견하여 요리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김기호 셰프를 만났다.
본인은 늦깎이 셰프라고 말하며 젊은 후배들처럼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식재료를 찾고 그것으로 만들어보는 실험 주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쑥 하나도 어린 쑥과 다 자란 쑥의 맛과 색상이 다르듯 식재료의 성장별 맛과 특징의 체험을 요리에 직접 적용하기 위해 7년 전부터는 일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직접 일군 텃밭에서 나는 채소로 식당의 밥상을 차리고 있다.
얼마 전 맛본 식사에는 현미칩 위에 비트청을 살짝 바르고 싱싱한 딸기를 올린 애피타이저, 싱싱한 쑥갓샐러드 위에 올라간 부드러운 전복구이와 찐찹쌀튀밥, 통감자로 만든 스프위에 올라간 한우안심구이,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은은히 감도는 아이스크림 등이 이어졌다. 김기호 셰프의 음식은 무척 밝다.
음식설명을 굳이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돌아온 계절을 알 수 있게 한다. 눈에 튀는 현란한 컬러는 아니지만 식재료 본연의 색을 알게 해준다. 또한 종가집 간장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했던 즐거운 음식문화탐사 경험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초록바구니 주방을 기웃거리다 "Natural, Environment(friendly), Waste zero, Sustainable" 이라는 써 놓은 칠판을 엿보았다.
셰프가 직원들과 공유하는 그의 생각을 담은 단어들이었다. 유기농, 윤리적 소비 등 그럴싸한 단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평소 김 셰프의 성격을 봤을 때, 그저 자연이 좋아서,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재료를 찾기 위하여 농사를 짓고 이를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애정으로 제로(ZERO)까지는 아니더라도 쓰레기가 덜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바구니’ 가득 담아내는 셰프 나름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닐까.
요즘 음식은 한식인지 양식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참 많다. 장난치듯 섞어놓은 응용음식에 싫증이 날 때도 종종 있다.
초록바구니의 요리는 새로운 시도의 응용이지만 깊이가 있고 화사하지만 수선스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날 속이 편한 건강 음식이니 종가집 간장 마냥 오래도록 지속되고 시간과 함께 깊이를 더해갈 듯 하다.
초록바구니



주소 : 서울 용산구 이촌로84길 9-18
전화 : 02-790-3421
메뉴 : 한정식(대표) 55,000원, 초록정식 33,000원, 테이스팅메뉴 88,000원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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