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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_통닭이 먼저냐 닭똥집이 먼저냐?

2020.04.06 | 조회 : 2,418 | 댓글 : 0 | 추천 : 0

 

 

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

통닭이 먼저냐 닭똥집이 먼저냐?

 

 

기름이 배여 터지기 일보직전의 누런 봉투가 귀갓길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날, 자는 척 하던 어린 형제는 벌떡 일어나 때 아닌 통닭 포식을 하곤 했습니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보슬보슬한 맛이었는데, 형과 나는 다리 하나씩을 맡았고 어머니는 살이 별로 없는 날개 쪽을 드셨지요.

요즘은 닭다리보다 날개 쪽이 더 인기라지만 당시엔 삼계탕이나 통닭이나 오동통한 다리가 핵심이었습니다.

기름이 밴 그 봉투엔 통닭 그림과 함께 ‘수원 태백통닭’이라 선명하게 쓰여 있어서, 중학생이 된 뒤 호기심에 그 집을  찾아가보기도 했습니다. 입구 옆에는 전자레인지 비슷한 큰 구조물이 있고, 그 속에 벌거벗은 닭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신기한 모습이었는데 그런 방식이 전기구이였음은 한참 후에나 알았습니다.

이런 형태의 통닭집들은 주로 ‘영양센타’라는 간판을 달고 성업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의 유행이었습니다. 이후 상호에 ‘통닭’이라는 말 대신 ‘치킨’이란 외래어가 차지하면서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군웅할거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요. 그런 까닭에 닭 튀긴 것을 ‘통닭’이라 말하는 사람은 구세대이고, ‘치킨’이라고 부르면 신세대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닭이 물 밖으로 나온 대중적 첫 시도가 통닭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게다가 통닭구이의 출발이 1960년대 초반이니까 저희 같은 베이비 붐 세대들과는 태생적 운명공동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통닭 조리법의 변주는 매우 다양하였지만, 가마솥 기름에 통째로 튀긴 옛날 방식을 제가 선호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닭의 특정 부위만을 따로 떼어내 요리하는 식당들도 많은데, 춘천의 명물 닭갈비가 그러하고, 남도 지방의 닭 가슴살 육회도 그러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라는 닭발도 매움의 정도에 따라 메뉴가 나뉘고, 뼈를 아예 발라서 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옛날 방식을 쓰는 통닭집에서 내는 닭똥집(모래주머니)을 따라올 부속물 안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통닭도 통닭이지만 튀김옷을 살짝 입혀 튀겨낸 닭똥집에 먼저 손이 가는 이유는 근육덩어리인 똥집 특유의 쫄깃함과 고소함 때문입니다. 똥집이란 말은 모래주머니를 속되게 이른다지만, 모래주머니라 표현하면 외려 모래를 씹는 느낌이 떠올라 영 맛이 나질 않습니다. 

 

 

이수역 인근에 위치한 ‘이수통닭’은 강남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찾는 2차 필수코스입니다.

통닭 한 마리는 기본으로 주문을 하고 별도로 닭똥집 한 접시를 추가하는데, 동반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합니다.

하지만 이 많은 걸 언제 다 먹느냐고 하던 친구들에 의해 닭똥집과 통닭은 ‘순삭’을 당하고 말지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닌, ‘통닭을 먼저 해치우느냐 닭똥집을 먼저 해치우느냐?’ 같은 신종 ‘치킨게임’을 한바탕 벌이게 됩니다.

 

 

 

이수통닭

서울 서초구 방배천로 92

02-581-8892 

가마솥 생생 통닭 17,000원 모래집(닭똥집)튀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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