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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붕장어 국수의 한판 승부

2020.02.10 | 조회 : 10,256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붕장어 국수의 한판 승부

 

 

와인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프랑스어 ‘베레종(véraison)’이란 단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과일의 성숙이라고 나오는데, 포도로 말하자면 파란 청포도가 익어 붉은 포도가 되어 가는 순간을 연상할 수 있다. 우리네 인생에 비유하자면 터닝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어떤 일을 하다가 깨달음의 순간이 오거나 월등히 몇 단계를 뛰어오르는 시기를 맞을 때도 있다. 또는 직업을 색다르게 바꾸는 경우도 베레종에 해당될 듯하다. 

 

 ‘작은수산시장’의 채성태 대표는 젊은 날 유도라는 격한 운동을 하다가 요리의 직업세계로 인생의 베레종을 맞았다. 그가 택한 종목은 바다산물요리. 포도가 성숙하여도 포도나무의 기본 성질과 품종은 바꿔질 수 없듯 채대표의 요리에는 늘 운동선수다운 승부가 따랐다. 

 

예전 그의 외식업계 데뷔 종목은 전복이었다. 전복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시절, 삼계탕용 닭에 생전복을 과감하게 듬뿍 넣어 푹 고아 끓여 내왔다. 그리고 통쾌하게 말했다. 닭살이나 전복살은 남겨도 좋으나 국물만은 다 먹어달라고. 문득 불도장이 떠올랐다.

닭, 오리는 기본이고 건해삼, 건전복, 상어지느러미 등 30여 가지 식재료가 들어가고 재료에 맞게 굽거나 찌거나 하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되는 중국의 보양식인 불도장은 결국 여러 귀한 재료는 주방솥 바닥에 있고 고객 앞에는 한 그릇의 국물만 내보이게 된다.

불도장 마냥 채대표는 전복과 닭을 우려낸 국물을 보약처럼 먹게 했던 '해천탕'을 탄생시켜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이후 그는 바다 생선으로 만들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에 줄곧 몰두했다. ‘초덮밥’은 초밥 위에 두툼한 생선이 올라간 일본풍 덮밥이다. 초덮밥의 생선회가 꽤 넉넉하여 초덮밥 한 그릇을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적잖게 있을 정도다.

 

 

그러다 최근에는 붕장어(일명 아나고) 사랑에 푹 빠졌다.

해안가를 따라 도는 여행을 즐기다가 해변의 향토 음식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민물장어가 매끈하게 빠진 차도남이라면 붕장어는 마치 차도녀에게 늘 차이기만 하는 덩치 큰 순정남같은 느낌이다.

유도선수 출신 채대표는 아무래도 바다장어인 붕장어가 그와 걸맞는 의리 장어라고 본 듯하다. 붕장어를 푹 고아내면 튼실하지만 다소 징그럽던 그의 생김새가 이내 부드러운 생선살로 무너져 내린다.

여기에 된장과 연한 배추를 넣어 한 번 더 푹 끓여준다.

그 뒤 마른 국수를 넣는다. 건면에서 나오는 전분도 어느새 붕장어탕으로 스며들어 부드럽고 걸쭉한 질감을 더하고 국수는 어느덧 붕장어탕과 일체가 되어 한 그릇이 된다. 붕장어국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붕장어튀김은 세상 부드러운 바삭 친구다.

 

 

만드는 노력과 붕장어국수의 푸짐함에 비해 요즘 식대치곤 비싸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인근 군인들이 생각났단다. 국방부 인근이라 젊은 군인들이 점심시간에 많이 오가는데,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문턱 낮은 든든한 꺼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게다.

붕장어국수로 군인아저씨들과 벌일 한판 승부가 벌써 기대된다. 

 

 

작은수산시장

주소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4.

전화 : 02-790-1045

메뉴 : 붕장어국수 7,000원, 장어튀김 15,000원, 초덮밥 10,000원부터~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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