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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_도가니탕을 먹으면 진짜 도가니가 좋아질까요?
2020.02.10 | 조회 : 4,350 | 댓글 : 0 | 추천 : 0
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
도가니탕을 먹으면 진짜 도가니가 좋아질까요?

전통 의학에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치료 한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보강한다는 사고로 뼈를 강하게 하려면 뼈 종류를 먹어야 하므로 소 골수를 많이 먹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이류보류'(以類補類)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간이 나쁠 경우 동물의 간을 집중적으로 섭취를 하고, 소화기능을 도우려면 소의 위 근육을, 무릎이 시원치 않은 사람은 동물의 도가니 즉, 무릎 뼈와 그에 부착된 고기를 먹음으로 해서 치료효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서양의학 쪽에서 어찌 판단할 지는 요령부득입니다.
하지만 논리와 과학을 떠나 몸에 좋다고 하면 뭔들 못 먹겠습니까? 저도 최근에 다리 관절들이 매우 불편하여 수술을 받았는데, 빠른 회복을 위하여 도가니탕을 찾게 됨은 인지상정이겠지요.
예전에 인기 절정이었던 먹거리 프로그램에서 전국 대다수 식당의 도가니탕은 '착하지 않다'라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진짜 도가니를 사용하는 식당이 거의 없다고 했기 때문인데, 실제 도가니탕에 넣는 소의 무릎뼈(도가니뼈)는 소 뒷다리 부위 두 군데에서 나옵니다.
또 도가니살은 뒷다리 위쪽 무릎뼈에서 시작하여 넓적다리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으로 지방은 거의 없고 연골인 물렁뼈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뼈와 살까지 포함하면 한 마리당 약 10kg 정도 나온다고 하니 그리 귀하지도 또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양입니다. 그런데 탕에 힘줄(스지)을 첨가하면 착하지 않다는 기준은 저로서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과거 100프로 메밀만으로 만들어야 착한 막국수이고, MSG를 넣지 않아야 착한 냉면이라는 명제도 선뜻 찬성하기 어려웠지요.
평소에 저는 미시적 음식평론가는 절대 못 되고, 얼렁뚱땅 거시적 평론가라 자처하는 까닭에 음식은 맛있으면 되는 것이고 또, 도가니탕 특유의 걸쭉함과 고소함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서대문의 유명한 도가니탕 노포 역시 '착하다, 착하지 않다'를 떠나서 맛있으니까 많은 손님이 찾는 것이겠지요.
도가니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이라는 의미와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치과대학 출신이면 익히 봐왔고 들어본 단어이지요. 그때는 도가니라는 말보다 영어인 ‘crucible’이라 많이 썼는데 그래야 좀 있어 보여서일까요?
치과용 금니나 금인레이 등을 만들려면 금을 녹여서 주물 틀 안에 넣어야 하는데 그때 금을 녹이는 작은 그릇이 도가니인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흥분의 도가니’나 ‘감격의 도가니’처럼 관용어구로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소설 '도가니'와 동명의 영화 '도가니'는 흥분이나 기쁨의 의미가 아니라 아비규환이나 아수라장 같은 의미여서 단어의 용례가 맞게 쓰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 시쳇말로 흔히 '도가니가 깨졌다'고 말하고, 촛대뼈나 무릎뼈가 상사의 구둣발에 차이면 '쪼인트 까졌다'고 하지요. 표준말을 쓸 때보다 훨씬 어감이 강하고 전달력이 배가됩니다.
퇴원을 하고, 수원에서 도가니탕으로 한 획을 그은 식당을 점심시간에 찾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명불허전의 맛이긴 한데, 반주로 소주 한잔이 무척 생각이 납니다.
옆자리 네 분은 벌써 ‘각 일 병’ 끝나고 추가할 기세로군요. 저러다 넘어져서 대낮에 도가니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야말로 도가니를 위해 먹으러 갔다가 당하는 ‘도가니의 역설’이군요.
아리랑집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권로 185 권선11번가시장 217호 031-225-7890
뚝배기도가니탕
19,000원 도가니전골(중) 5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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