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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_수원왕갈비
2019.11.25 | 조회 : 2,472 | 댓글 : 0 | 추천 : 0
석박사의 오늘 뭐 먹지
수원왕갈비로 하모니카 한번 불어보실래요?

갈비로 유명한 고장은 많습니다.
포천의 이동갈비, 부산 해운대의 암소갈비, 남도지방의 떡갈비 그리고 경남 안의의 갈비찜 등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래도 수원의 왕갈비가 으뜸이 아닐까요?
갈비 크기가 얼마나 컸으면 일본의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산케이의 구로다 가스히로 특파원마저 수원왕갈비를 잡고 뜯는 모습이 꼭 하모니카를 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을까요.
그는 일식은 눈으로 먹는 음식이고, 한식은 귀로 먹는 음식이라 하였는데, 숯불에 갈비 익는 소리에서부터 갈비 뜯는 소리 그리고 정치와 세상사 이야기로 왁자지껄하게 먹어야 한식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수원왕갈비와 정조의 화성축조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정조가 실제 수원화성으로 천도까지 구상하였는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세종시 건설과 그 목적이 비슷한 구석은 옅보입니다.
정조는 신도시 완성을 위하여 전국의 양반들을 설득하여 이주를 시킨 뒤에 그 자제들에게 별시를 시행하여 벼슬을 나눠줬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시험으로 승부하는 ‘수능’이 아닌 일종의 ‘아빠 찬스’나 ‘학종’으로 합격생을 뽑은 경우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의 이주가 문제였습니다. 화성도 축조를 해야 하고 또 둔전을 꾸려가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데 그 유인책으로 농사에 필요한 소를 한 마리씩 빌려주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3년 거치 송아지 상환’이라는 백성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걸었으니,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었겠지요.
이후 우시장 주변에는 소고기를 넣은 국밥 식당들이 생겼을 것이고, 해방 후에 ‘화춘옥’이라는 식당이 갈비에 양념을 발라 구워 팔면서 수원갈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현재 직장이 있는 곳은 수원 우만동입니다. 우만(牛滿), 소가 가득한 동네라는 뜻이니 우시장에서 거래가 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풀을 뜯어 먹이면서 기다렸다는 말도 되겠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농촌진흥청과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을 매년 두어 차례 방문하였는데, 이때 화춘옥에서 갈비로 식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치적으로는 아직 어두웠지만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수원 인근에는 골프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마이카 시대까지 도래하면서 서울에서 나들이 삼아 수원갈비를 먹으러 오니 자연스레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유행시킨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면서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메뉴를 소개했지요.
공교롭게도 수원엔 갈비뿐만 아니라 통닭도 유명한데, 실제 그 왕갈비통닭 맛이 수원갈비 맛과 과연 같을지 궁금했습니다.
수원갈비의 기본 조건은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입니다만, 왕갈비통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갈빗집 사장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더군요.
독자 분들도 휴일에 가족들과 수원왕갈비로 일단 배를 채우고, 수원화성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면서 역사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소화가 됩니다. 그리고는 성곽 안에 위치한 통닭골목에 들러 그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요?
본수원갈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223번길 41
031-211-8434
양념갈비 43,000원 생갈비 46,000원
신라갈비
경기 수원시 영통구 동수원로 538
031-212-2354
양념갈비 43,000원 생갈비 4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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