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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가을향기 즐기는 무요리
2019.11.11 | 조회 : 2,345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가을향기 즐기는 무요리

무가 없는 식탁을 상상해봤다. 국물에서 나오는 시원함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될지 모른다.
설렁탕을 먹을 때 잘 익은 새콤한 큰 깍두기를 한 입 와그작 베어 먹는 즐거움이나 뜨끈한 밥에 무말랭이 무침을 오돌오돌 씹는 맛도 접어두어야 한다.
어릴 적 먹은 엄마의 무국은 무척 단순했다. 무를 도마에 놓고 가지런히 썰지 않고 어슷어슷 크게 돌려 깎았다. 마치 큰 연필을 깎듯이 말이다.
불규칙하게 썰어진 무를 냄비에 넣고 기름에 달달 볶다 약간의 고춧가루를 넣어 끓인 단출한 레시피의 국은 신기하게도 깊은 단맛이 났다.
어른이 되어서도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계절이 오면 자연스레 뜨끈한 무국이 생각난다. 무만으로 국물의 맛을 온전히 내려면 단맛이 든 `겨울 무‘가 기본이었고 엄마의 무국은 늘 겨울에 등장했다.
한식 요리를 처음 배울 때 무요리가 상당한 고난도 요리임을 알게되었다. 특히 무나물은 상대의 요리 실력을 간파하기 좋은 지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나물 스타일은 지역마다 다르다.
기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물로 볶는다는 표현을 하는 무나물도 있는데, 어쨌든 무가 곤죽이 되지 않으면서도 씹는 맛은 남겨야 되니 무나물의 완성도를 보면 그의 요리 내공도 슬쩍 엿본 듯 했다.
제주도에서는 오로지 무채나물만 넣어 돌돌 말은 메밀전을 빙떡이라고 부른다.
이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제주도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이라 꼽을지도 모르겠지만 제주도 토박이들에게는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입맛 당기는 음식 중 하나다.
일본도 한국처럼 무사랑이 깊다.
일본의 오뎅집에서는 한국과 달리 어묵 뿐 아니라 두부, 토란 등 다양한 식재료를 만나볼 수 있는데, 오뎅을 먹을 줄 안다는 고수가 와서 초반부에 꼭 시키는 품목이 큰 덩어리의 무다.
오뎅국물의 간장맛이 은은히 밴 무를 젓가락을 한쪽 떼어 먹으며 그날의 오뎅코스 서막을 연다. 그리고 오래된 이자카야에서는 기본 메뉴라고 내놓는 것이 무샐러드이다.
채썬 생무에 소스가 얹어 나오기에 처음엔 이걸 돈 주고 사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나이든 일본인일수록 무샐러드를 곧잘 시키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아삭아삭한 시원함이 술안주로 제격인 모양이다.
무는 부피도 크고 가격도 저렴하여 음식의 메인 역할보다는 듬직한 디딤돌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실컷 쓰이고도 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때가 있다.
알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무가 많이 쓰였다고 싼음식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요즘은 무가 왕성하게 출하되고 단맛이 베어들 때다. 무를 주인공 메뉴로 성업하는 맛집을 찾아봤다.
군산 한일옥의 ‘무우국’의 인기는 현지인들은 신기해한다.
옛날의 작은 집에서 옮겨온 대형 가옥엔 무국을 먹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무와 소고기가 들어있는 맑은 국은 여느집제사날 올리는 탕국과도 유사하다. 간단한 모양새의 국이 꽤 시원하다.
원강은 주문후 바로 지어주는 ‘무밥’이 인기다.
무채와 다진 소고기가 들어 있는 무밥에 양념장을 넣어 비빈 후 구운 김에 싸먹는 맛은 중독성이 있다.
시래기지짐, 국물자작두부조림 등 모두 추억을 소환하는 반찬도 맛깔지다.
유프로네는 골프장 인근에 있어 운동한 후 한 그릇을 든든히 먹을 사람들이 주로 들른다. 무가 큼직하고 고기가 아주 부드럽다. 단 고기국물의 주역이 무임을 먹다보면 알게 된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한일옥

전북 군산시 구영3길 63
063-446-5491
무우국 9,000원
원강
서울 강남구 학동로6길 16
02-3445-1518
무밥 11,000원(2인이상주문)
유프로네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로 33
031-339-9180
가을무와 한우암소뭇국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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