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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_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
2019.10.06 | 조회 : 2,494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

온전한 삶은 지루하지 않았고 온건한 국수는 밋밋하지 않았다. 올해의 가을은 혼동과 함께 찾아왔다. 크고 작은 태풍이 수시로 위협했고 반복되는 경보와 주위보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다 9월이 다 갔다. 이럴 때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마주하며 위로를 받는다.
고기를 구수하게 우려낸 육수, 잇몸으로 씹어도 버터처럼 녹아드는 면발, 그 위에 잘 삭힌 깻잎지를 감싸 먹으면 삶에서 잃어버린 온전함을 회복하는 기분이다. 한쪽으로 삶이 치우친다 싶을 때는 할머님이 끓여 주시는 국수집으로 찾아간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찾는 국수집도 따로 있다. 만 원짜리 한 장 정도는 넉넉하게 쓰겠다 싶으면 안동국시집으로 향한다.
한우 양지로 끓여낸 육수는 몸보신으로도 제격이다. 콩가루에 밀가루를 배합하여 중면 정도로 밀어낸 면발은 쫀득하게 씹히다가도 부드럽게 녹아 들어간다.
설렁탕에 풀어먹는 소면과 다른 느낌인 것은 깍두기 보다 깻잎과 부추 무침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쌉싸래한 깻잎은 고깃국의 고소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자칫 뒤따라 올 수 있는 느끼함을 말끔히 털어낸다.
살짝 매콤하게 즐기고 싶을 때는 부추를 올려 먹는다. 푸릇한 신선감에 알싸함이 더해진다.
삼사천원이 아쉬운 날은 맘 편한 멸치국수 집으로 간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이나 영양조차 저렴한 것은 절대 아니다.
멸치에서 오는 감칠맛이야 말로 육수의 정점이니까. 거기에 유뷰와 계란이 올려지면 한끼 단백질로도 충분하다.
깻가루를 솔솔 뿌리고 김을 잘게 부수어 올리니 고소함이 콧구멍으로 향긋하게 들어온다. 예전에는 작은 냄비에 끓여주는 냄비우동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 찾기가 쉽지 않다.
안동국시가 가득 찬 맛이라면 멸치국수는 비 온 후 맑게 개인 맛이다. 잘 삶아진 소면을 후루룩 들이키면 마음에 무지개가 뜬 것처럼 상쾌하다.
교대역 우밀가는 안동국시를 잘 한다.
그 밖에 어복쟁반, 평양냉면도 유명하여 저녁 술 손님이 많은 곳이다. 반가식 음식을 지향하니 맛도 모양새도 정갈하다.
특히 자가제면의 장점이 돋보이는데 밀가루와 콩가루를 배합하여 반죽하고 충분히 숙성시킨다. 면은 쫄깃한 가운데 부드러운 식감이며 먹고 나서도 속이 참 편하다. 육수는 한우양지를 뭉근히 끓여내어 그 맛이 구수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집을 빛나게 하는 것은 조연인 깻잎이다. 켜켜이 된장을 바르고 푸른색이 감돌도록 저며낸 깻잎 절임은 중독성이 강하다.
청계산 고씨네국수는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간판 없는 식당이다. 청계산 자락에 위치하여 등산객들에게 사랑 받는 곳.
산자락에서 직접 농사짓는 야채는 아주머님의 손을 거쳐 바로 바로 요리가 된다. 특히 멸치국수는 개운하고 시원하다.
육수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고명이라고는 김 조금 밖에 없다. 야들야들한 소면에 말끔히 젖어드는 육수의 감칠맛.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면 배는 안 부른데 마음의 허기가 채워진 기분이다.미나리전과 감자전도 매우 훌륭하다. 제주의 춘자멸치국수는 양은냄비에 나온다. 이곳은 소면 대신 중면을 쓴다.
꽤 묵직한 면발이지만 숙성이 잘 되어 속이 편안하다. 고춧가루와 깻가루를 듬뿍 뿌리고 파를 송송 뿌려 준다. 칼칼한 깍두기를 올려 먹으면 묵은 갈증까지 시원하게 해소된다.
우밀가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30길 6, 02-564-1855, 안동국시 12,000원
고씨네국수
경기 성남시 수정구 옛골로 30, 031-723-8654, 멸치국수 4,000원
춘자멸치국수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동서로 255, 064-787-3124, 국수 4,000원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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