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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_곰탕
2019.09.30 | 조회 : 2,638 | 댓글 : 0 | 추천 : 0
석 박사의 오늘 뭐 먹지
진짜 Bear Soup 못지않은 곰탕 한 그릇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라면 부러 시간을 내어 먼 길을 마다않고 돌아다니는 ‘역마살’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생각하니 햇병아리 전공의 시절부터였음이 분명합니다. 혈기방장한 20대 중후반이었지만 인생의 지혜도 모자랐고 또 삶의 목표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지요.
수련기간 몇 년 동안,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던 저희들을 번듯한 의료인으로 키워주셨던 교수님들은 덤으로 식도락의 세계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점심 식사가 되었든 저녁 회식이 되었든 모래내에서 성북동 구석까지 장안의 유명 식당들을 거의 섭렵을 하며 논문 지도에 버금가는 ‘미식 지도’를 받았습니다.
한 가지 메뉴만 취급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내는 그런 식당들이었지요. 설렁탕, 삼계탕, 칼국수, 보신탕, 냉면, 등심구이... 그중에도 곰탕은 을지로의 하동관을 주로 찾았는데, 당시에도 주문과 함께 식비를 선불로 내야하고, 손님들은 무조건 종업원의 지시를 따라야하는 ‘을’의 신세였습니다.
그룹회장이 오든, 대학총장 혹은 일용노무자가 오든 신분고하의 차이가 없는 그런 독특한 곳으로 기억합니다.
전통 한식을 소개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그 명칭의 유래에서부터 조리법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의 음식고서나 일제 강점기 때의 신문 등을 찾아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곰탕이란 말은 해방 이후에나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곰탕의 ‘곰’은 분명 ‘고으다’ 혹은 ‘고다’에서 온 것이고, 이는 식재료나 약재 등을 푹 삶거나 달여 진액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명칭만으로 따지면 곰탕은 고깃국 전체를 대표하는 음식일 터이고, 설렁탕, 꼬리곰탕, 소머리국밥, 고기국밥 등은 곰탕의 부분집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군요.
서양 음식에서도 부이용(bouillon)이라는 육수농축액과 콩소메(consomme)라는 맑은 고기육수가 있습니다. 곰탕육수처럼 부이용이나 콩소메는 표면에 뜨는 기름기를 정성껏 제거하여 맑은 육수를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맑은 콩소메에 밥을 말면 서양식 곰탕이 되지 않을까요? 만약 밥 대신 쌀국수를 넣고 생선 소스와 고수를 좀 추가하면 월남쌀국수로 변신 할 수도 있고, 차가운 콩소메에 메밀국수를 말면 냉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고기국물이 되었던 요리사의 영혼까지 푹 고아야 제 맛이 나옴은 당연하겠지요.
곰탕은 지역별로 약간 달리 발전해왔는데, 대표적인 곳으로는 나주, 현풍, 영천, 진주, 서울 등입니다.
이북의 해주도 곰탕이 유명하다지만, 평양냉면집에서 취급하는 온반도 널리 보면 곰탕 계열이고, 함경도 음식인 가릿국도 곰탕 가문의 일원일 테지요.
저희 세대들은 들불처럼 번졌던 ‘불타는 조개구이’나 ‘안동찜닭’의 부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육개장 붐이 일더니, 최근엔 여기저기에서 곰탕집 간판이 눈에 뜨입니다. 대개는 프랜차이즈 형태이지만, 독자적으로 서울 하동관이나 나주 하얀집의 아성에 도전하는 곳도 꽤 생겼습니다.
심지어 곰탕집 특유의 고기 누린내를 잡아 깔끔하게 탕을 내는 곳도 있으며, 위생과 친절로 무장까지 하였으니 수육 안주만으로도 친구들과 소주 몇 병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집니다.
뒷마무리로 양지 수육에 내포가 넉넉하게 들어간 곰탕을 선택하면 다음날까지 속이 든든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곰탕을 영어로 ‘bear soup’이라 쓴 곳이 있었다지요? 든든한 곰탕 한 그릇은 웅담이 들어간 실제 ‘bear soup’ 못지않은 건강식임을 말하려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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