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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이 시대의 보신탕
2019.08.23 | 조회 : 2,622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이 시대의 보신탕

충주 인근의 지역사회개발 자문위원이 되어 여러 번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날, 모임을 주관하던 마을회장은 멀리서 오는 외부 손님들에게 다음번에는 회의 후에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삼복더위에 영양보충이 될 수 있는 음식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토종닭 백숙을 상상하며 갔는데, 예상치 못한 개수육이 나왔다. 동네 주민 한 사람은 며칠 전 봤던 그 누렁이냐고 물어왔다. 몇 십 년 전 시골 풍경을 보는 듯 했다. 개 수육 시식이 끝나니 깻잎과 들깨가 듬뿍 들어간 개장국이 나왔다. 참석한 대부분이 중년 남성들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개고기 애호가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꽤 흐뭇한 표정이었다. 더운 여름 몸보신용으로 각자 몸을 챙기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 보였다.
하지만 요즘 개고기 이야기는 민감하고 불편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개를 반려동물로만 봐야 된다는 아주 큰 목소리와 예부터 개고기를 다양하게 먹어온 음식디미방(조선후기 한글조리서)의 자료 및 프랑스 역사 속 개고기 유통의 근거까지 제시하며 개 식용 문화의 역사와 당위를 주장하는 측이 있다. 양쪽 모두 팽팽한 입장이다.
어쨌거나 개고기 식용 논란을 떠나 외식의 음식상품을 개발하는 측에서는 ‘보신탕’이라는 이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장, 개장국 등의 ‘개’라는 이름이 직접 사용되었던 음식이 이승만 정권 때 개를 먹는 것이 야만스럽다는 서양인의 압력에 의해 직관적이었던 음식의 이름이 슬그머니 몸을 보한다는 ‘보신탕’이란 용어로 순화되면서 개고기국을 대체하는 명칭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금까지 오면서 애연가들의 흡연 공간이 줄어들 듯, 개로 만든 보신탕을 사먹을 수 있는 업소도 점점 감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위를 이기는 고단백음식을 찾는 인간의 욕구는 끊임없고 특유의 개고기 향을 없애기 위해 사용되었던 들깨와 깻잎의 맞춤 양념 맛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이 박혀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외식전문가들은 기존의 개로 만든 보신탕의 양념은 그대로 사용하되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없는 육류를 찾게 되었다.
소고기처럼 익숙한 고기에 들깨와 깻잎 등 유사 양념을 사용하고, 지방이 적은 개고기와 유사한 소의 양지머리나 홍두깨 부위를 결대로 찢어 국에 넣은 뒤 소고기보신탕 또는 우신탕이라는 메뉴명으로 체인점까지 내는 경우도 생겨났다. 또는 호주의 양고기 수입이 왕성해지면서 양구이전문점에서는 양고기를 구워 먹은 뒤 들깨양념으로 양 냄새를 살짝 감추면서 전골이나 탕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게 되었다. 아마 개고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 우호적이었다면 소고기보신탕이나 양고기탕 개발을 더뎌졌으리라
‘벽돌집’은 보름 숙성된 양고기 전문 구이집으로 매니아에게 인기가 높은 식당이다. 이 집의 보양탕은 푹 고은 양고기 육수에 양고기살, 들깨, 채소 등이 들어간 즉석전골이다. 여기에 밥을 넣어 끓이면 더욱 별미다
‘일미옥’의 인기 메뉴 중에 하나가 소고기보신탕이다. 들깨기름장에 고기를 찍어 먹는 것까지 개고기 보신탕 집에서 보던 모양새이다. 점심시간에는 소고기보신탕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램랜드’는 한국식 고기구이 방식으로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전문점으로 역사가 길다. 이곳의 전골은 커다란 사각냄비에 나오는데, 잘 익은 커다란 양다리가 통으로 나온다. 깻잎이 덮여 나오지만 특유의 양내는 약간 남아 있다. 물론 매니아들은 이 양고기 향에 더 빠져들게 된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벽돌집

서울 송파구 중대로9길 36. 02-403-6400. 보양탕 12,000원
일미옥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19길 10-21. 02-533-7199. 소고기보신탕 8,000원
램랜드
서울 마포구 토정로 255. 02-704-0223 전골(1인)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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