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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_쌉싸름한 메밀면에 고소함 한가득, 들기름 막국수
2019.08.05 | 조회 : 2,573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쌉싸름한 메밀면에 고소함 한가득, 들기름 막국수

비 내리고 날이 더우면 하루를 보내는 일이 수월치 않다. 골목길에 가득한 익숙한 고소함. 막국수집에서 이번 여름에 내놓은 들기름막국수가 주범이었다.
사장은 매일 아침 들깨로 기름을 짰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메밀 반죽을 시작하여 국수를 뽑았다. 들기름막국수는 장마철을 맞아 엄청난 잠재력을 터뜨렸다.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막국수 집으로 걸어가게 했고 입맛이 없다던 사람들도 마지막 기름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쓱쓱 비벼먹게 만들었다.
들기름막국수를 먹을 때면 공기를 느낀다. 힘들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비벼지는 국수와 기름, 그 사이를 움직이는 손과 팔이 우아해지고 그 느낌에 머물고 있는 사이 구수한 향이 공기로 스며온다.
국수를 먹는 동안에도 온전히 감각 속에 빠져들 수 있다. 순도 높은 메밀면은 질깃거리지 않고 지긋이 씹히는데 그 안에서 유전자로부터 기억하는 듯한 고귀한 쌉싸름함이 스믈 스믈 찾아온다.
이 향의 흐름은 이윽고 들깨유에게 마술처럼 낚인다. 메밀과 들깨는 서로 뒤엉키면서 하나의 생명체처럼 조화로운 결합 구조를 이루어 간다.
메밀은 들깨유를 부르고 들깨유는 메밀을 다시 활기차게 만든다. 만약에 이 면에 밀면이나 쫄면을 넣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유려한 흐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들기름막국수가 주목 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막국수가 맛있으려면 육수나 비빔장에 의지하지 않고도 면은 면대로 들깨유는 들깨유 대로 제대로 뽑아내야 한다.
일단 이 두 가지의 완성도가 높으면 독특한 느낌과 익숙한 향미로 빠른 시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
들기름막국수의 제 맛을 알기 위해서는 단연코 고기리막국수에 가보아야 한다. 들기름막국수를 2012년부터 시작하여 알음알음 유명하게 만든 오리진이다.
현재까지도 가장 섬세한 메밀의 맛과 들기름과의 조합이 완성도가 높은 곳이다. 통메밀을 가져다가 직접 매장에서 제분하여 날아가기 쉬운 메밀의 향을 고스란히 잡았는데 냉면용 메밀가루를 가져다 쓰는 식당과는 차원이 다른 면 씹는 멋을 전해준다.
면의 본질에서부터 막국수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내는 곳이다. 청류벽은 순면에 그날 식당에서 착유한 들기름을 쓴다.
신선한 들기름을 공수하기 위해서 매장에 착유기를 설치한 특이한 예다. 선바위메밀장터도 들기름막국수를 시작했는데 수년간 유명했던 명태회냉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순면 위로 참깨가 쏟아지니 메밀 보다는 깨 향이 강하고 손님들이 아쉬울까 하여 삶은 계란 반 개를 올려준다.
절반 정도 먹은 후에 채소 육수를 더하면 물막국수의 2막이 시작된다.
고기리막국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 031-263-1107, 들기름막국수 8,000원
청류벽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74길 29 1층, 02-2055-1191, 들기름막국수 10,000원
선바위메밀장터
경기 과천시 뒷골로 5-7, 02-504-0122 들기름막국수 9000원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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