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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_맛있게 변신한 부추요리
2019.07.14 | 조회 : 2,542 | 댓글 : 0 | 추천 : 0
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맛있게 변신한 부추요리

학창시절 여름 농활(농촌활동)을 가서 만들었던 요리가 부추김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부추겉절이였는데, 밭으로 일하러 나가기 전 억센 부추에 멸치액젓을 조금 넣어 섞은 뒤 뚜껑을 덮어 두었다.
몇 시간 지나 돌아와 보니 부추가 여름 더위와 액젓의 소금기 공세를 이기지 못해 숨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약간 풀이 죽은 부추는 너무 억세지도 그렇다고 곤죽이 될 정도도 아닌 적당히 씹기 편한 부추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고춧가루, 깨소금 등 약간의 양념을 가하니 부추겉절이가 꽤 그럴 듯하게 완성되었던 기억이 난다. 부추 요리할 때, 우선 부추가 ‘적당히’ 부드러운 채소로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작지만 즐거운 발견이었다.
처음 시도한 부추 요리였는데 선배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았다. 마치 고스톱 첫 입문자가 프로를 이긴 듯 했다.
경북 청도는 내게 씨 없는 감이 아닌 부추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시간을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옛 가정집 식당인 ‘참물샘집’ 할머니의 부추전은, 부침개 한 장에 들어가는 부추양이 내 기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곳이었다.
할머니는 한 뭉치 부추를 바가지에 넣고 썩썩 문질러서 부추의 거센 기운을 뺀 뒤 밀가루 반죽위에 부추를 올려놓고 손으로 꾹꾹 눌러 반죽에서 삐져나오려는 부추를 진압한다. 열이 가해지면서 부추와 반죽은 점점 한 몸이 된다.
하지만 50년 이상 이어온 할머니의 부추 숨죽이는 솜씨는 아쉽게도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부추를 많이 재배하는 서천 농부의 밥상에서 야들야들한 어린 부추를 쌈 채소로 만났었다.
그 집에서는 뻣뻣해지기 직전의 부추만 따서 장아찌도 담갔다. 그렇기에 농가 부추장아찌는 먹다보면 입안에서 남는 부추의 섬유질이 훨씬 적어 먹기 부담이 없었다.
농부는 부추의 숨을 죽이려는 요리의 노력보다 밭에서 최적기의 부추를 따서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고 있었다.
[본초강목]에는 부추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우리 장의 기능을 높인다는 이로운 효능이 기술되어 있고 생활 속에서도 부추는 많이 먹고 있지만 부추의 제기능을 잘 살려 메인음식처럼 나오는 곳은 그리 흔하지만은 않다.
이번에는 부추 하나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맛집을 찾아보았다.
중식당 ‘이닝’의 부추탕면은 생부추가 큰 국수그릇에 가득 덮여 나온다. 뜨겁고 걸쭉한 간장빛깔의 스프를 뒤적이면 부추의 숨이 죽으며 부추향으로 변신한다. 마치 동파육과 면을 함께 먹는 듯한 기분이 된다.
전북 완주 ‘기양초’는 상호 자체가 부추라는 뜻이다. 다슬기솥밥에 부추무침을 넣어 비벼먹으면 뜨거운 솥밥과 부추의 어울림으로 기양초(起陽草)의 한자대로 양기가 살아날 것만 같다.
대한옥의 꼬리찜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부추였다. 부추양념장이 꼬리찜에 부어 나오는데, 푹 고은 꼬리찜과 부추 그리고 양념장이 합을 이룬다. 고기 맛이 베인 양념장에 소면사리를 넣어 비벼먹는 것도 작은 별미가 된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이닝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8길 14
02-547-7444
부추탕면 런치13,000원(디너 16,000)
대한옥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51길 6
02-2633-5052
꼬리수육 36,000원-49,000원
기양초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508
063-247-6667
다슬기부추돌솥밥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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