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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이윤화의오늘은뭐먹지]문어,부드러움의 합合
2018.03.04 | 조회 : 2,919 | 댓글 : 0 | 추천 : 0
문어, 부드러움의 합(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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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엄마와 함께 동해안을 여행하다 강릉 중앙시장에 들른 적이 있었다.
수산물시장 지하 한 쪽은 거대한 김을 쏟아내며 손님이 점찍은 문어를 직접 삶아 파는 방식이었다.
동해안까지 왔으니 문어를 사서 삶아 가면 한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며 엄마는 문어를 고른 뒤 10여 분은 될 듯한 시간 내내 문어가 들어간 찜 솥 앞을 떠나지 못하셨다.
그 동안 시장 안을 구경하면 좋으련만... 김장철에는 고추를 말린 뒤 고춧가루로 빻기 위해 방앗간에 가서는 중국산고추와 섞일까봐 걱정이 되어 자리를 지키듯, 강릉 시장에서는 8개의 문어다리가 집에 와보니 7개인 적이 있었다며 이번엔 문어다리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셨다.
나는 그때 문어다리가 8개라는 것을 알았고 당시 강릉에서 삶은 뒤 집까지 몇 시간 걸려 가져온 문어가 생각보다 부드러워서 깜짝 놀랐었다.
어릴 적 극장에서 씹었던 마른 문어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물 속에 들어있는 문어도 질겼던 것이 적지 않아 문어는 물컹하지만 질긴 거라 생각해왔었다.
엄마 또한 문어를 부드럽게 잘 삶기가 쉽지 않다며 노련한 시장상인의 솜씨로 삶아가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 다양한 외식을 경험하면서 문어요리야 말로 숙성(熟成)과 휴지(休止) 그리고 부드러움의 합(合)을 이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라도에서 경사든 애사든 빠지지 않는 접대 식재료로 ‘홍어’가 있다면 경상도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문어’일 것이다.
동해안 묵호항에서 삶아 8시간 걸리는 완행기차로 영주까지 가져오면서 아주 부드러워진 문어의 맛을 찾았다는 옛 선조의 경험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소나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큰 생선도 맛이 제대로 들 때는, 크기와 조건에 따라 잡은 뒤 하루 이틀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된다.
음식의 맛이 무르익게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되는 것을 문어 맛을 보며 알게 되었다.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영주, 안동은 말한 것도 없고 한양에서 몰락한 양반들이 내려와 살았다는 강원도 고성이나 경남 밀양 등 동해안 인근에서 당시 신분이 높았던 집안에서 상에 힘을 주었을 때는 문어가 올라갔고, 동네 손맛 좋다는 아낙의 표준지표는 문어를 얼마나 잘 요리하나로 판가름했다고 한다.
밀양의 밀성손씨 내림음식 ‘문어수란채’는 호사의 부드러움이었다.
삶은 문어를 얇게 썰어 설탕, 식초, 간장, 깨소금, 참기름, 잣을 넣어 간이 배도록 두었다 거기에 냉수를 붓고 달걀을 물속에서 부드럽게 익힌 수란을 넣는다.
시원하게 먹었던 여름음식으로 식초의 시큼한 맛과 약간의 단맛 그리고 달걀과 합쳐진 문어의 야들야들 씹히는 맛은 진정한 부드러움의 합(合)이다.
서울에서는 양식당 셰프들이 부드러움의 합으로 문어와 아보카도의 매칭을 곧잘 시도한다.
잘 익은 아보카도와 부드럽게 잘 삶은 문어를 함께 먹을 때, 뭐가 문어이고 아보카도인지 모를 정도로 혼연의 맛을 느낄 때, 최고의 부드러운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문어요리가 맛있어도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중년의 남자동료는 문어머리가 자꾸 연상되어 부드러움의 합을 느낄 겨를이 없다며 술 핑계를 늘어놓곤 한다.
열두대문
전화 : 055-353-6682 /
주소 : 경남 밀양시 밀양향교3길 17 /
메뉴 : 열정식 25,000원부터 (한정식에 문어수란채 나옴)
뽈뽀
전화 : 02-537-7090 /
주소 :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29 /
메뉴 : 문어아보카도 23,000원
가드너아드리아
전화 : 02-549-4698 /
주소 :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길 73 /
메뉴 : 속초피문어아보카도샐러드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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