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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의 오늘은 뭐 먹지?] 팥죽 먹자, 내 안에 악마가 들어오지 않도록
2018.02.24 | 조회 : 2,964 | 댓글 : 0 | 추천 : 0
[임선영 작가의 오늘은 뭐 먹지?]
팥죽 먹자, 내 안에 악마가 들어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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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났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배부르게 들었다.
정말, 당신은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이 신문을 읽는 시간 조차 초조함과 불안함이 감돌고 있다면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행운 바라기가 되기 보다는 불행을 피하는 편이 백배 낫다고. 나폴레옹은 흔치 않는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등 뒤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일생일대의 행운은 가장 불안하고 불행할 때 찾아온다. 그렇다면 지금쯤 먹어야 할 음식은 명료하다.
액운을 씻는 음식 팥죽 한 그릇.
액운은 우리 주변의 질병과 사고, 실수 혹은 실패로 나타나고 우리를 남들보다 가난하고 외로우며 고통스럽게 했다.
천사 보다는 악마의 역할이겠지.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 조상들은 아주 철학적이지만 꽤 합리적이기도 한 방편을 써 왔는데 그게 바로 팥이다.
팥죽은 한국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음식으로 기록되어 왔다. 붉은색은 잡귀를 몰아내는 주술적 역할을 했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긴 겨울의 밤을 맞이했다.
그 이유는 중국 고사에서부터 유래한다.
공공씨(共工氏)라는 남자가 자신의 아들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동짓날에 죽었다. 죽은 아들이 역질 원귀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공공씨는 아들이 생전에 싫어했던 음식이 팥죽임을 기억하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어 원귀를 좇았다.
그 이후로 팥죽은 가신에게 올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전해졌다. 부모님께 팥죽과 술 한잔을 올리며 장수를 기원한다는 기록도 고려시대 익재집(益齋集)에 나와있다.
오늘날 집들이나 개업 날에 팥시루떡을 돌리거나 아이의 백일에 팥수수떡을 올리는 의미도 마찬가지, 액운을 쫓아내기 위한 주문이다.
특히 팥죽이나 팥떡은 혼자 먹는 법이 없다. 가족 혹은 이웃에게 돌리고 나누어 먹는다.
너의 불행은 나의 쾌락이 아닌 당신이 무탈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착한 인류애였다.
팥죽의 인류애를 과학적으로 한번 증명해 볼까.
팥의 영양 성분에 열쇠가 있다. 팥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 50%, 단백질이 20% 인데 나머지 30%에는 수분과 함께 칼륨과 칼슘, 철분 성분이나 비타민 A, 비타민 B2 등이 함유되어 있다.
칼륨은 체내 나트륨을 배출하고 비타민 B1은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돕는다.
껍질의 붉은색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여 노화의 주범인 활성 산소를 제거한다.
신장의 기능을 도와 체내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 독소를 배출하고 혈액의 순환을 도우니 체내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남성들은 머리가 날것이며 몸이 붓거나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여성은 살이 빠질 것이다.
팥을 과하게 먹었을 경우는 진액이 빠져나가 몸이 허해질 수도 있다.
여기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찹쌀이다. 찹쌀은 위를 보호하고 원기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니 찰떡 궁합이라는 말이 또한 새알팥죽에 어울리리라.
2018년 대부분의 가정에는 가마솥이 없다.
그렇다고 편의점 전자레인지를 빌어 간편죽을 돌려 먹지는 말자.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도 재래식으로 새알팥죽을 하는 집들이 있으니.
아래 추천하는 세 곳, 식당은 험블하나 그 옛날 어머님의 정성이 살아있다.
국산 팥을 구해다가 껍질을 채로 걸러 앙금을 곱게 내고 설탕 대신 소량의 소금으로 간한다. 쌉싸름함과 달큰함이 밀당을 하고 입에서는 따스하나 배 속에 들어가면 허열을 식히도록 서늘하리라.
주인장은 빛 고운 찹쌀로 쫀득한 새알을 직접 빚는가 하면 팥칼국수의 국수발도 직접 밀어낸다. 팥죽과 최고의 궁합을 내는 김치는 또 어떤가, 고향의 맛을 살려 청량하게 간이 배고 그 시원함이 사이다 뺨치는 진짜 김치를 선보인다.
방배동 동지팥죽은 팥죽과 함께 들깨수제비가, 사당동 신박사팥죽은 김치수제비가, 옥합콩국수는 한우사골칼국수도 명물이라 곁들여 먹는 재미도 있다.
내일의 길에서 천사를 만나고 싶거든 오늘 팥죽집에 들어가 따스한 새알 팥죽 한 그릇 먹자. 총을 겨누던 악마들이 벌벌 떨며 작별을 고하리라.
동지팥죽
- 서울시 서초구 방배1동 935-1/
- 02-596-6272 /
- 새알팥죽 8,000, 팥칼국수 7,000
신박사팥죽
-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1032-43/
- 02-587-1487 /
- 옹심팥죽 8,000, 팥칼국수 7,000
옥합콩국수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591-1 103호/
- 02-355-0559 /
- 새알옹심이팥죽 8,000, 팥칼국수 7,500
임선영 음식작가, 셰프의 맛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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